다양한 욕구의 다양한 독자층을 만나는 저자일수록 늘 삼가는 마음이 된다. 시 짓기 스무 해라는 시인 이영옥은 성년식을 치르는 심정이라며 풋풋한 새책을 보내왔다. 작가 정미경은 책 내는 것을 여밈이 없는 얇은 천 하나만 걸친 채 바람 부는 거리에 선 것에, 이청준은 젖은 옷 입고 거리에 나서는 것에 비교했다.
그렇게 책을 쓰고도 시인 강은교는 아, 언제 저 매미처럼 울 수 있을까. 언제 마지막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한탄하며 유언 같은 책을 남기기를 갈망한다. 어떤 책이든 벌거벗은 저자의 나신이며 수십만 권을 찍어도 한 권 한 권이 분신인 것이다.
저자 증정본을 몇 번 돌려본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차마 신문지상에 밝히기 곤란한 에피소드가 많다. 서점보다 먼 사무실에 찾아와 왜 책을 안 주느냐고 곰살궂게 따지는 위인도 으레 꼭 생긴다. 책을 사서 저자 사인을 받는 선진 외국과 달리 관례처럼 문화계에 만연된 공짜심리가 전이된 경우다.
또 책을 받고도 상당수는 입을 씻고 과묵한 체한다. 그래선지 옛글 한 구절이 심금을 울린다. ‘보내주신 책은 양치하고 손 씻고 무릎 꿇고 앉아 정중히 읽었습니다.’(답창애.答蒼厓) 다음 문장에 비록 옥에 티를 지적하기는 했지만 책을 받아 든 옛 선비의 태도가 엄숙하다.
“책 잘 읽었습니다. 다음 책은 또 언제 주실 거예요?” 계속 공짜를 누리겠다는 심보인데, 이렇게라도 관심을 표해주면 차라리 덜 얄밉다. “베스트셀러가 못 되면 대한민국은 문화국가 아닙니다. 지하철에 서서 매달리며 며칠을 전투적으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런 공치사라도 두고두고 반갑고 고맙다.
저자는 자기 책 앞에 서면 자식 둔 부모처럼 약해진다. 섭섭한 말을 하러 갔다가 가지런히 꽂힌 내 책을 보고는 단념한 적이 한두 번 아니요, 사무실 바닥에 나뒹구는 책을 남몰래 가방에 수거한 적도 있다.
대개 저자들이 겸공(謙恭)을 해서 그렇지, 줄 때는 책상다리받침으로라도 쓰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버리려면 잘 버려줘야 한다. 옷감 하나 하늘하늘 두르고 바람 부는 네거리에 선 저자를 걸레처럼 팽개치진 말자. 저자 서명이 들어간 쪽을 오려내고 버리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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