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희 대전지방노동청천안지청 근로감독과장 |
우스갯말로 전라도에서는‘거시기`라 하면 웬만한 것은 다 통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갑이 말하는 거시기를 을이 다르게 받아들이면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자로 내용을 정리한다면 이것보다 명확한 것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각종 각서, 차용증, 계약서 등이 생겨났고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서 공증제도도 생겨났다. 노동시장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그대로 적용된다.
임금과 퇴직금 등을 제대로 받지못한 근로자 상당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근로계약의 사전적 의미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대가를 받을 것을 조건으로 노무를 제공함을 약속하는 유상쌍무계약이다. 이 근로계약은 전세, 매매계약 등 다른 계약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대등한 인격체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임금 등의 근로조건을 명시한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후일에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임금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기도 하고,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는 당초 구두계약보다 많은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우리 근로감독관이 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는지를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다. 소규모 사업체에서 일일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전세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전세금을 잃게 되었을 때도 같은 대답을 할 것인가? 아닐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자신을 탓할 것이고, 작성한 계약서를 분실했다면 더 심하게 자책할 것이다.
계약서란 둘 사이에 정한 내용을 제3자도 알 수 있도록 글로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제3자는 근로감독관이 될 수도 있고, 판사가 될 수도 있다. 서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제3자에게 진정, 소송 등을 통해 판단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때 계약서가 없이 당사자 사이에 구두상 싸움을 벌이면 제3자의 입장은 난처해지고, 진실을 말하는 일방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자신의 손해를 최소화하는 길은 계약내용을 글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점점 더 문서화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자조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명확한 사회가 되어간다고 받아들여 그 사회에 적응해가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근로계약은 근로자가 파는 노동력 또는 노무의 값어치를 확정짓고, 사업주가 제공하는 금전의 대상을 명확히 하는 법률행위이다. 여기에 특수한 근로조건이나 근무조건을 첨삭한다면 우리 노동시장의 다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 근로자에게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지급방법에 관하여 서면으로 명시한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정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소정근로시간, 휴일, 휴가에 관한 사항을 서면으로 명시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로자의 요구가 있으면 그 근로자에게 교부하도록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 다음달 1일부터 시행예정이다.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인 우위에 있는 사용자가 근로계약서 작성문화를 선도해 법을 준수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상호협력의 노사문화를 만들어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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