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등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 한 후 돌아가면서 야자감독선생님께 하는 인사말이다.
지난 며칠 전 어느 신문에 실린 학교폭력에 대한 글 중 있는 말 생각난다.
“강요된 자율학습은 많은 학생들의 시간과 장소를 일부 학생의 교과학습분위기를 위해 착취하고 통제한다. 강요된 자율학습은 단순히 타율학습인 것이 아니라 학교폭력이다. 늦은 밤 이유 없이 교실에서 졸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 학교폭력의 희생자들이다.”
자격증과 학벌, 경쟁을 강요하는 공부, 입시지옥 등 ‘죽음의 트라이앵글` 속에서 내신과 수능 그리고 논술의 가시밭길을 걷는 아이들은 요즘의 학교문화 일부분이다. 아이들이 야간자율 학습하는 교실을 보노라면 마치 총 칼 없는 전쟁터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삼십분 더 공부하면 내 마누라 몸매가 바뀐다.”
“한마음으로 우리는 갈수록 비상한다‘(한우갈비)”
“포기란 배추를 셀 때나 하는 말이다.”
“야동 1분 줄이면 퀸가 1m 다가온다.”
“2호선을 타자!(서울 지하철 2호선)”
“티코 탈래? BMW 탈래!”
“잠은 죽어서 자라.”
“원서 쓸 때 웃자.”
위 이야기는 성적향상을 위해 학습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고육지책으로 나온 교실에 걸려있는 급훈들 중 일부이다.
지금 일선 초등학교에서 조차 과거의 ‘수·우·미·양·가`식의 통지표가 아니라 과목별 평균과 학생 점수를 기재하는 방식으로 성적 통지표를 발송하고 있다. 이제 초등학생들과 학부모들도 ‘죽음 트라이앵글`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7차 교육과정에서는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서열화, 등급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지필평가보다 면접, 체크리스트, 관찰, 포트폴리오 등 다양한 형태의 수행평가 위주로 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평가 처리는 총점과 평균 점수 기록 중심에서 개별 학습자의 학습내용의 특성별(영역별) 성취 수준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식(예, 이 학생은 수 개념이 잘 형성되어 있고 덧셈, 뺄셈을 능숙하게 하며 평면도형의 특징을 앎)으로 하게 되어 있다.
지난 20세기가 국가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창조도시의 세기이다.
창조도시란 작지만 독자적인 예술문화를 육성하고 지속적으로 내발적 발전을 통하여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도시를 말한다.
근대 산업화 과정에서 급격한 도시화를 이루었다가 탈산업화로 도심이 동공화, 황폐화한 도시를 문화와 경제의 융합을 통해 문화적 생산 도시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는 창조적 도시만이 도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학교문화 속에서 자란 아이들로는 미래의 창조도시를 준비할 수 없다. 학교의 교육과정은 창조와 문화의 세기인 21세기를 대비하고 있는가? 학교는 지역의 문화예술단체와 손잡고 미래의 창조도시를 위한 내용들을 교육과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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