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갑갑한 세상과 싸우는 ‘러브스토리’

  • 문화
  • 영화/비디오

[영화]갑갑한 세상과 싸우는 ‘러브스토리’

■황진이 감독 : 장윤현 출연 : 송혜교, 유지태

  • 승인 2007-05-31 00:00
  • 신문게재 2007-06-01 11면
  • 안순택 편집위원안순택 편집위원
당당하고 단아… 인간적인 ‘송혜교표 황진이’
“진이와 놈이가 했던 사랑이 세상을 바꾼다”
세련된 의상·헤어스타일·세트 등 큰 볼거리


“내 정조를 드릴 테니 기둥서방이 되어 주세요.”, “기생년을 이리 어렵게 품는 사내가 어디 있답디까?” 예고편에 나오는 이런 대사들에 속지 않길 바란다. 영화 ‘황진이`엔 벗는 장면이 없다. 섹스 장면이라고 해봐야 ‘온돌신`이 있긴 하지만 그나마 쓴 약 삼키듯 후딱 지나가버린다. 하지만 송혜교의 말대로 벗지 않아도 볼거리는 풍성한 영화다.

꿈 많은 별당아씨 황진이(송혜교). 친어머니가 천한 몸종이었다는 출생의 비밀을 듣고는 충격을 받는다. 세상이 온통 껍데기뿐이라고 여기게 된 진이는 소꿉친구였던 놈이(유지태)에게 몸을 내주고 그날로 기생들의 거리인 청교방으로 들어가 명월이 된다. 입을 앙다물고 다짐한다. “이 세상을 내 발 밑에 두고 실컷 비웃으며 살거다.”

진이에게 남은 건 위선적인 양반네들을 실컷 비웃고 조롱함으로써 자신의 선택이 옳았고 자신이 떠나온 곳이 낙원이 아님을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뿐이다.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의 황진이는 그 어떤 황진이보다 뜨겁다. 시대와 성(性)의 벽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길 원했던 여인, 요구된 윤리에 맞서 욕망을 사르고 새 시대를 꿈꿨던, 치열한 삶을 살았던 여인이다. 한편으론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또 주위 사람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그들을 위하는 인간다운 모습도 보여준다.

장윤현 감독은 홍석중의 소설을 원작으로 가져오되 진이와 놈이의 로망에 초점을 맞춘다. 벽계수며 서화담이며 원작의 풍성하고 다단한 가지들을 쳐내버리고 단아한 멜로드라마로 빚어냈다.

장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시대를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황진이와 놈이가 했던 사랑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시대의 금기를 뛰어넘는 자유의지다. 그것이 없으면 결국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황진이가 했던 것처럼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화적의 두목으로 사람들에게 의적 소리를 들었던 놈이가 결국 관아에 붙들려 처형 하루 전날 진이와 옥사의 문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정을 나누는 장면에 집중한 것도 그런 뜻일 터.

그러나 영화는 폭발하지 못한다. 굴곡 많은 황진이의 삶을 그리면서도 지루하다. 기생 명월이를 둘러싼 사내들의 애욕이 질척거리지 않고 드라이하게 처리된 건 그녀의 고고한 자태를 두드러지게 만들지만 걸쭉한 입담과 오밀조밀한 재미들을 걷어가 버렸다. 진이와 놈이의 마지막 옥사신도 차근차근 쌓아둔 정회가 폭발하는 지점이 아니라 미처 말하지 못한 걸 다급하게 고백하는 듯 낯설다. 너무 단아해서 감히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단아해서 무겁다.

빠른 전개의 ‘달리기`식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이 ‘황진이`의 ‘느리게 걷기`식 구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볼거리만큼은 확실하다. 4년간의 기획과 71억 원의 제작비, 7개월간의 촬영 기간이 증명해주듯 영화는 때론 스펙터클하고 때론 섬세하다. 원색조의 톤을 자제하고 되도록 자연광을 활용해 전체적으로 화면은 어두우면서도 절제된 느낌이 들지만 음식 의복 건축물 등 곳곳에서 묻어나는 16세기의 화려함과 절제미의 발견은 영화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 할 만하다.

코스튬 드라마라고 할 만큼 ‘극도로` 화려한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미학의 정점을 느끼게 한다. 녹색과 청색, 검정색의 의상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며 금강산, 담양 소쇄원, 남원 광한루, 남산 한옥마을 등 전국 8도를 돌아다니며 담아낸 절경에 눈이 즐겁다. 마지막 장면을 금강산에서 찍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당하고 인간적인 황진이, 그녀와의 만남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6월 6일 개봉. 15세 이상.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백석대·백석문화대, '2024 백석 사랑 나눔 대축제' 개최
  2. 한기대 생협, 전국 대학생 131명에 '간식 꾸러미' 제공
  3. 남서울대 ㈜티엔에이치텍, '2024년 창업 인큐베이팅 경진대회' 우수상 수상
  4. 단국대학교병원 단우회, (재)천안시복지재단 1000만원 후원
  5. 1기 신도시 첫 선도지구 공개 임박…지방은 기대 반 우려 반
  1. 남서울대, 청주맹학교에 3D 촉지도 기증
  2.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 도안신도시 변화
  3.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4.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연내 착공 눈앞.. 행정절차 마무리
  5. 대덕구보건소 라미경 팀장 행안부 민원봉사대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가 도안신도시로 변화한 분위기다. 대다수 단지에서 미분양이 속출했는데, 유일하게 도안지구의 공급 물량만 완판 행렬을 이어가며 수요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하반기 일부 단지의 분양 선방으로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내년에 인건비와 원자잿값 상승,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 등으로 인한 분양가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21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분양한 도안 2-2지구 힐스테이트 도안리버파크 2차 1·2순위 청약접수 결과, 총 1208세대(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1만3649건이 접..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대한민국 펜싱의 역사를 이어갈 원석을 찾기 위한 '2024 대전광역시장기 전국생활체육 펜싱대회'가 뜨거운 열기 속에 막을 내렸다. 시장배로 대회 몸집을 키운 이번 대회는 전국에서 모인 검객과 가족, 코치진, 펜싱 동호인, 시민 2200여 명이 움집, '펜싱의 메카' 대전의 위상을 알리며 전국 최대 펜싱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23~24일 대전대 맥센터에서 이틀간 열전을 벌인 이번 대회는 중도일보와 대전시체육회가 주최하고, 대전시펜싱협회가 주관한 대회는 올해 두 번째 대전에서 열리는 전국 펜싱 대회다. 개막식 주요 내빈으로는 이장우..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