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훈수는 훈수다. 대통합하라, 국민은 양당구도를 원한다, 사생결단이라도 하거라, 약도 되지만 수읽기 틀리면 독이 되는 훈수다. 그만 한다, 그만 한다 하면서 그만 못 두는 훈수는 가려운 곳 긁어주길 원하는 수요가 있어서다. 질 때 져도 떳떳한 정수(正手)가 아쉽다. 묘수라도 조심해야 한다. ‘묘수 세 번이면 바둑 진다’는 바둑 격언도 있었다.
매사 정도껏 해야 보는 사람이 즐겁다. 훈수를 넘어 여권 지휘봉 잡았다는 비난이나 얻어듣는다면 뒷방정치는 이내 싫증나고 만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튀어나와 DJ의 “발악”이라고 내뱉은 독설까지 ‘발악’이고 훈수일 수 있다. 그도 내심은 언제나처럼 “와 고민하노, 단호하게 대처해라” 훈수하고 싶을 것이다. ‘낙서금지’ 낙서도 낙서다.
대권 후보, 그들이 형편없는 하수(下手)여서 훈수를 바랄까? 원로의 원론적 훈수가 꼭 정치발전이나 정치적 파괴력에 보탬이 된다기보다 답답할 때 점쟁이 찾아가서 뻔한 소리라도 듣는, 그런 심정이기도 한 것이다. 영향력이 옛날 같을 수야 없다. 비유해서 가령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DJ와는 접바둑(하수가 두 점 이상 놓고 두는 바둑)도 그저 황송하다고만 조아렸겠는가.
손학규, 김혁규, 정대철, 정동영, 박상천, 이해찬, 정세균 등의 인사들은 다들 정치판에서 잔뼈 굵은 상수(上手)들이고 크게는 서로 맞바둑(호선괎삑? 둘 만한 실력들이다. 수위를 넘어선 훈수정치는 바둑 용어로 무리수다. 계보나 지역주의에 근거한다면 아주 악수(惡手)일 테고, 훈수꾼만 설치면 오래잖아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어”라는 역정을 듣는다. 멋모르는 구경꾼이 국민 아니다.
초보적인 얘기지만 바둑은 종국에 집을 많이 차지한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난공불락의 대마를 희롱하다가 죽은 줄 알았던 돌들에 포위당하기도 하는 바둑판이고 정치판이고 세상사다. 정치 9단 DJ가 모를 리 없는 이치다. 정치판이 마치 자고 나면 벌이는 동네 줄바둑 수준이 될까봐 하는 경고인데, 훈수 잘못 들어도 바둑에서 진다. 바둑의 원리가 순리이기 때문이다. 정치도 결국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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