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길 충남대 경상대학장 |
병을 제대로 고치려면 병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처방을 하여야 한다. 만일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면 병을 고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치료를 통해 병을 키우거나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논리는 개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조직의 문제를 진단하고 적절한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 이 지역을 대표하는 국립대학의 총장이 개인적 비리와 정책적 오류로 인해 총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하여 학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걱정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어 후임 총장을 제대로 선출하기를 바랄 뿐이다.
총장의 사퇴의사 표명과 함께 대학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관련 교수들이 검찰에 소환되는 것은 대단히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그런데 학교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 매우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이번 사태는 그동안 보여 준 총장의 정책적 실패와 리더십 부재, 그리고 총장의 개인적 비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은 총장의 독단적 결정을 견제할 대학의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며, 또한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행태를 보인 총장의 개인적 문제가 겹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원인을 총장 직선제라는 제도적 문제로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간선제를 운운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문제의 진단이다. 총장 직선제가 어느 정도의 폐해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총장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는 전국의 모든 대학이 이러한 정책적 무능과 개인적 비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총장 직선제는 사회의 민주화 과정과 더불어 어렵게 쟁취한 것이고 앞으로도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제도이다.
어떤 제도도 지선지고한 것은 없다. 현재의 선거풍토에서 선거인단을 통해 이루어지는 간선제는 더욱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킬 뿐이다. 선거인단을 자기 사람으로 심어놓기 위한 치열한 공작이 이루어질 것이고, 선거인단을 회유하기 위한 후보들의 노력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불법적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현 사태의 원인은 비민주적 대학의사결정구조의 산물이다. 총장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한을 교수회 등에게 적절하게 분산하여야 하며, 투명한 학교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총장을 비롯한 학무회의가 행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대학의회의 역할을 하는 대학평의회 등을 만들어 실질적으로 총장의 독주를 견제하고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작동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와 같이 총장만이 대학의 유일한 의사결정기구이고, 모든 것이 총장의 개인적 판단으로 결정되어지는 제왕적 총장이 군림하는 한 언제든지 이런 사태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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