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도시명과 도시는 흥망이 같은 운명공동체라 한다. 어딜 가나 여근곡(女根谷)과 본능에 충실한 암수 쌍봉이 있는 걸 보라. 강에는 물만 흐르는 게 아니고 삶이 흐른다. 금강을 보자. 전북 장수의 발원지 부근에서 적등강, 금산 부리면에서 적벽강, 신탄진에서 시알강, 부여에서 백마강, 강경에서는 강경강으로 부르기도 한다. 굽이굽이 사연도 다르다.
특별한 이름으로 이룬 특별한 세상은 행성에 가도 달라지지 않는다. 수성의 지형지물엔 정철과 윤선도가, 금성에는 황진이와 신사임당이 있다. 화성에는 진주, 나주, 장성이 올라 있다. 헝가리 야스페니사루 삼성떼루 1번지는 삼성전자 헝가리법인 주소다. 떼루는 광장, 우리의 동(洞)이나 통(統) 정도 된다.
수도를 ‘관습’으로 본 무식함은 잊기로 하고…. 대전 관저동은 진잠현의 옛이름인 기성관(杞城館) 아랫마을이라서 관하촌(館下村) 또는 관저리(館底里)라 불리던 곳. 이처럼 땅이름은 발자취이며 역사다. 그리운 사람(임)이 사는 마을(실)이 임실인데 한자 취음(任實)을 적고 열매의 고을이라며 억지까지 쓴다.
열매는, 특히 붉은 열매는 돌림자 ‘양’인 땅에서 잘 자란다. 밀양만 해도 얼음골 사과, 단감, 대추가 특산물이다. 음성처럼 ‘그늘 음(陰)’ 자를 쓰고도 고추농사가 잘되기는 한다. 매운맛이 일품인 청양 고추의 주산지에도 ‘양’이 들어간다. 청양(靑陽)이 맑고 푸른, 따뜻한 봄볕에서 유래했을 것도 같다.
비밀의 ‘밀’, 태양의 ‘양’.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창동의 복귀 작품으로 전도연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밀양’. 영화 대사처럼 뜻 보고 사는 게 아니고 그냥 살기도 하지만, 밀양을 비밀의 햇빛(시크릿 선샤인)으로 해석한 감독은, 풍수연구가 최창조 필법으로 “순수한 인간적 본능에 의해 땅을 바라보는” 자세랄까. 햇빛이 아름답게 못 비출 만큼 추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던 에머슨의 감수성이랄까.
좌우간 햇빛은 어디에나 있다. 인간에게 신이 아마 그런 존재이고 사랑도 그러하다. 영화도 영화려니와 밀양 땅 비밀스런 햇빛의 감도를 다시 확인하고 싶다. 한 줄기 햇살, 숨어든 시간과 세월, 진정한 밀양을 직접 찾고 싶어서다. 봄볕만인 줄 알았더니 올 여름빛도 어째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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