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된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학가에도 총장 직선제 열풍이 불었다. 이 제도를 채택하지 않으면 민주화와 자율화 대열에 동참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국공립대학은 정부가, 사립대학은 재단이 총장을 임명하던 제도는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당시의 시대적 조류에 뒤늦은 유감을 표할 생각은 없다. 어느 시기건 당대에 유효하고 필요한 ‘시대정신’이 있기 마련이고 직선제는 이에 부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선제는 대학의 독립과 민주적 의사결정 확립에 큰 구실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총장 직선제가 요구되는지 곰곰이 따져볼 때다.
총장 직선제의 묘미란 역시 입후보자들의 철학과 비전이 공론화되고 구성원들이 직접 대학을 이끌어 나갈 적합한 인물을 고르는 데 있다. 그러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다. 오늘날의 현실은 과연 어떨까?
무엇보다 여러 후보자들이 출마해 선거운동을 하지만 대다수 구성원들은 그들이 ‘어떤지’ 잘 모른다. 선거 홍보물이야 넘쳐 나지만 후보자들의 공약과 의지, 도덕성 등을 검증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능력과 품성이 뛰어난 인사보다 학연, 지연 등의 사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자,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선거운동에 쏟아 부은 자가 유리하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후진적 선거풍토가 조성된다.
왜곡된 변수로 총장이 선출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다. 조직의 최고 책임자는 대립하는 입장 차이를 조정할 줄 알고, 대의를 위해 소소한 이해관계에서 초연해야 한다. 그런데 스스로의 됨됨이보다 인맥에 기대고 물질적 자원을 투여해 당선된 자에게 그러한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을까? 자신의 개인적 영달과 치부를 위해 학교나 지역사회를 희생양 삼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폐해가 감지되면서 더 이상 직선제를 고집하지 않는 대학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만 해도 전남대 법과대학이 학장 직선제를 철회하고 선출권을 총장에게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이유인즉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 특히 차분한 분위기에서 로스쿨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총장과 그의 신임을 받는 학장의 호흡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총장 직선제를 폐기하면 다시 과거의 임명제로 회귀하는 걸까? 아니다. 정부나 재단이, 비록 최종 선임권을 갖고 있더라도 특정 인물을 일방적으로 총장 자리에 낙점하는 시대는 지났다.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제도는 동문을 포함한 학내 및 지역사회의 대표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총장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이는 후보자에 대한 철두철미한 검증을 가능케 함은 물론 총장 업무 수행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자연스레 담보하게끔 한다. 즉 직선제의 폐해를 해소하면서도 구성원들의 총의를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제도다.
부끄럽지만 대학, 특히 국립대학은 아직도 개혁의 무풍지대다. 총장 선출 제도의 획기적 개선을 시발로 충남대가 대학 개혁의 선두주자로 나서는 꿈을 꾼다. 지역주민과 동문, 학생들과 한 몸이 되어 일희일비하며 지역사회가 자랑스러워하는 그런 학교로 탈바꿈하는 꿈 말이다. 정말 위기는 기회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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