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유럽민족간의 의식은 개방적이고 특히 유럽연합 출범이후 한층 열린 정서와 개방체제를 지향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 탄생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분석할만하다. 1955년생, 만 52세로 프랑스 지도층과 엘리트 고급관리들이 거쳐 온 명문 그랑제콜인 ENA(국립행정학교), ENS(국립사범학교)가 아닌 평범한 대학인 파리10대학을 졸업한 뒤 20대 초반에 정치에 입문하여 28세에 파리 근교 뇌이이쉬르센 시장에 당선되었다. 이후 순탄한 관운으로 시라크 정부에서 내무, 재무장관을 역임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수년전 프랑스 폭동사태때 ‘톨레랑스 제로’라는 강격진압을 펼쳐 적지 않은 지지를 얻기도 하였다.
얼핏 코미디언 같아 보이는 외모에 160cm대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달변의 독특한 카리스마로 진작부터 지지층과 거부층이 명확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줄곧 상대후보 세골렌 루아얄을 일정한 비율로 리드하면서 결국 비슷한 표차이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중연설 기회가 없는 프랑스 대통령선거 운동 방식은 벽보도 학교나 관공서 등 일정한 지역에만 부착하고 플래카드도 내걸지 않는 등 다분히 제한적이다. 대화와 토론을 취미로 삼는 국민답게 후보 간 TV토론을 즐겨보고 삼삼오오 모여 나름대로 후보 품평과 정책공약에 대한 시시비비를 펼치는 선거전 풍경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지만 연말 대선을 앞둔 이즈음 새삼스럽게 부러워 보였다.
사상 최초의 여성대통령 탄생이 무산된 저변에는 보기와는 다른 프랑스인들의 보수성향도 한몫 거들었고 사회당 루아얄 진영의 실토처럼 피부에 와 닿는 구체적 정책제시에 소홀한 점이 크게 작용하였다. 어느 한 정파에 장기집권 기회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균형감각은 대체로 10여년 주기로 정권교체를 실현시켜왔다.
그런 논리라면 12년간 정권을 잡아온 시라크 정부에서 성장한 사르코지의 대통령 선출은 이변에 속한다. 53대 47이라는 선거결과가 말하듯 적절한 견제성향을 보여주었다. 프랑스에도 상존하는 지역색채는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대체로 전통적인 좌파세력이 우세한 프랑스 서, 남부 지역에서는 지금도 반 사르코지 집회와 크고작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파리지역에서도 외국인 밀집지대나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서는 루아얄 지지표가 많았고 파리의 강남이라 할 수 있는 8구, 16구 등에서는 사르코지에게 표를 던졌다.
요란한 선거운동이나 매스컴의 흥분, 자극적인 캠페인 없이도 80%가 넘는 투표율에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절묘한 지지로 다시 우파에 정권을 맡긴 프랑스인들의 현실적 선택은 아직 각 당 후보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엄청난 과열상태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대선레이스와 비교하여 프랑스 특유의 ‘차분한 열정’이라는 성숙한 선거문화를 보여준다.
프랑스 제5공화국 여섯 번째 대통령이 된 사르코지는 당선직후 외국으로 휴가를 떠나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받았다. 표정관리에 개의치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석패한 루아얄은 다음 선거 승리를 기약하며 권토중래, 절치부심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드골에서 시라크로 이어지는 프랑스 대통령 계보의 독특한 개성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대통령문화를 눈여겨 볼만하다.
국민영웅 드골의 성취와 좌절, 그 후광에 힘입은 퐁피두의 문화 마인드, 별다른 업적없이 ‘이미지 정치’의 불을 댕긴 데스탱, 노회한 승부사 사회주의자 미테랑의 분배 드라이브가 보여준 야심, 14년 임기를 2년 단축하여 힘겹게 두 번째 임기를 마친 시라크가 남겨놓은 여러 껄끄러운 숙제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사르코지 정권의 해법과 행보를 눈여겨볼만 하다. 그것은 올 12월 16일 대선 이후 우리가 당면할 정치현실에 관련하여 결코 멀지않은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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