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의 문제는 차이의 문제이고, 틀림의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다른 것`을 ‘틀린 것`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안정된 사회에서 문화의 다양성에 접해보지 못하고 짜여진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단시되던 사회에서는, 그리고 언제나‘옳은 것`아니면‘그른 것`으로 구분하던 흑백 논리에 익숙해 있던 사회에서는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다름의 문제가 백화만발의 발원이 된 것은 사색당파일 것이며, 만화방창의 절정시대는 암울하기만 했던 1970, 80년대가 아니었나 싶다. 이때는 나와 다른 생각이나 나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생활 습관을 알게 모르게 조장하며, 우리들의 의식 구조 밑바닥에 굳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가치관의 충돌에 맞닥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둘로 갈라진다. 여당과 야당으로 갈라지고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지듯이. 이 사회는 어느 정도 둘로 갈라지면서 균형을 잡아간다. 사람들이 둘로 갈라지는 이유는 ‘그들과 우리는 다르기 때문`이거나‘그들이 틀렸기 때문`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그들과 우리는 달라서`갈라진 것과‘그들이 틀렸기 때문에`갈라진 것을 혼동하기도 한다.
서로의 가치관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네가 틀렸어`라는 이유로 상대를 안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는‘너와 나는 생각이 다른 것`을 ‘네가 틀렸어`라고 혼동하는 것이다.‘다른 것`과 ‘틀린 것`을 혼동하는 가운데 곧장 대립과 갈등의 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이 문제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사회현상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가는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과 관련이 있다. 갈등을 해결함에 있어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밀어붙이기식`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일이다.
‘밀어붙이기`보다는‘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에 의한 갈등해결 방식이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이며, 선진화된 민주사회를 구축하는 길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화와 타협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일의 우선 순위를 정할 수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역지사지의 입장 속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서로간의 다름, 즉 차이를 발견하게 되면 조정과 타협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마음이 서로 맞는 사람하고만 살 수는 없다. 종파가 다르고 정파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곧 서로가 화합하여 나가는 가운데 다름을 지향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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