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현실… 한줄기 햇볕은 ‘사람들’
너무 아파 불편한 영화 그래도 재밌다?
영화는 피아노 학원 강사 신애가 아들과 함께 밀양으로 내려가는 길에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장난 차를 고쳐주러 온 종찬에게 신애는 문득 묻는다. “밀양의 뜻이 뭔지 아세요? 비밀의 햇볕이래요.” 종찬은 그날부터 이 속모를 여자를 졸졸 따른다. 부르면 다가서고 밀치면 물러나면서.
종찬의 도움으로 집과 피아노 학원을 얻은 신애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시당하기 싫어서 돈 많은 척, 쉽게 허락하지 않기 위해 도도한 척하지만 실은 “남들이 날 불행한 여자라고 하지 않는다면 난 감쪽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라고 믿고 모르는 사람들 속으로 도망쳐 온 여자다. 동네 아줌마들에게 “불행하지 않아요. 잘 살고 있어요. 괜찮은 땅 있으면 소개시켜주세요”하고 허세를 부리지만 이는 더 큰 고통을 부른다. 허세를 믿었던 사람에게 아들이 유괴당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오자 삶의 희망을 놓아버리고 만다.
이쯤에서 힘든 삶이지만 행복하게 살려는 여자에게 벅찬 시련을 안겨줬으면 그만하고 ‘해피`해져 가는 그림을 그릴만도 하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은 지독하다. “현실은 잔인한 거야.”
신애를 종교 품에 안겨 위로를 하는 듯하더니 이내 방향을 튼다. 아들 살인범을 용서해 주려고 찾아간 신애. 하지만 “주를 영접하고 용서와 구원을 받았다”는 살인범의 말에 돌아버린다. “에미인 나 말고 대체 누가 무슨 자격으로 그를 용서한단 말인가.”
비밀의 햇볕? 영화 어디에 햇볕이 있긴 있었나. 작아지고 작아지다 못해 끝내 부서지는 신애에게 햇볕이 있었나. ‘밀양`이 잔인한 건 시작이, 시작이 아니고 끝이, 끝이 아니라는 거다.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은 툭 베어낸 삶의 한 토막일 뿐이다. 신애는 밀양에 내려오기 전에도 숱한 고통을 겪었을 거고 머리를 싹둑 자르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자른다고, 절망이 잦아들었다고 희망이 오는 건 아니라고 들려주는 듯하다.
비밀의 햇볕은 뭐였나. 밀양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신애의 삶에 오지랖 넓게 끼어드는 이들 주변 사람들은 때론 무례하고 때론 따뜻하다. 우리 주변 사람들도 그렇다. 햇볕은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 어디에고 있다. 그저 그냥 어디든 똑같이 따뜻한 온도로 비출 뿐이다. 가리려 드는 사람을 제외하곤 말이다. 햇볕에 맡겨라, 거기에 구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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