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선완 건양대병원 정신과 교수 |
그러므로 사회 연대를 위해 소외된 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이 없으면 이들은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어려움과 사회에 대한 분노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하루 하루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를 잘 돌볼 여유가 없다.
또한 자신들도 좋은 양육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잘 해주는 것인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 하다. 그러므로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수준의 계층에 속한 아이들은 부모의 적절한 양육의 경험과 관심이나 배려가 결핍되기 쉽다. 어린 나이에는 어느 정도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은 믿고 살만한 곳이고 내가 그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외부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생긴다.
이런 믿음을 발판으로 세상과의 교류가 시작되고 대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건강하고 성숙한 인격체로 발달해 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항상 결핍되고 정에 굶주리고 버려질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린 사람들은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 아니며 나를 위해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그들은 주인공이고 나는 소모품이다.’라는 생각에 사로 잡힌 채로 살아간다. 항상 세상을 경계하고 세상에 대해 분노하면서. 그러나 역시 본질은 외로움이다. 그래서 어느날 누군가 나에게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사람이 생기면 반신반의하면서도 마음이 확 끌린다. 그래서 마음 속의 텅 빈 자리를 채우려는 듯 강렬하게 다가간다. 상대방은 당연히 부담스럽다. 그래서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이 때 다시 느끼는 배신감! 역시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 아니라는 강렬한 확신을 갖게 된다.
남들과의 관계는 아동기에 경험한 양육의 관계를 기초로 한다. 받아 본 적이 없으면 표현하기도 힘들다. 기본적으로 외롭고 그 외로움을 현실 대인관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 될 지 모르는 이들에게 세상은 구원이 아니라 고통이다. 그런데 이런 이들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관심과 애정으로 다가와서 한발 나아가 그들에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소속감까지 부여하는 집단이 있다. 바로 조직 폭력배 집단이다. 표면적으론 의리와 조직애로 단단히 결속해서, 세상에 대한 분노를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래서 머리 속으로는 양심적 판단이 있을지언정 정서적으론 끌린다.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블랙홀처럼 조폭 집단은 이런 사람들은 끌어 들이고 강력한 세력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건 사법적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들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나는 양극화가 필연적으로 초래할 이런 사회문화적 혹은 정서적 결과가 더 두렵다. 우리 사회는 과연 감당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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