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작은 태도 하나로 전체를 유추할 수 있는 법. 실무회담 때 북측 박수림 육군 대좌(대령급)가 우리측 문성묵 대령(국방부 북한정책팀장)을 대하는 품이 바로 그런 것이다. 문 대령의 15분 지각에 대해 “기분이 잡쳤다”면서 ‘군사행동`에서의 시간의 중요성을 훈계해 뜨악하게 한 대목은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시간을 못 지킨 것은 외교상 결례다. 그래도 보름달 뜨면 만나자 약속하던 한민족끼리 옛정을 생각해서 물렁하게 넘어가도 좋을 사안이었다. 비약하면 북측의 깐깐함은 남북 철도와 우리 당국, 전체 우리 국민을 어떻게 여기느냐의 잣대가 될 만한 기준이나 척도라고 본다.
15분이 하잘것없다는 뜻이 아니다. 방송이라면 15분이면 1쿼터로 제작자 입장에서는 그 안에 피 말리는 승부를 내야 한다. 쿼터리즘(15분주의)이라고, 15분 이상 집중 못하며 약속도 자장면 배달도 15분을 더 못 참는 게 또 요즘 세태다. 시간 도둑이 제일 나쁜 도둑이라지만, 1쿼터도 안 봐준 사람들과 장차 민족의 큰 사업을 도모해나갈 일이 염려스럽다.
원래 시험운행은 작년 5월로 예정됐었다. 북측이 예정일 하루 전에 난데없이 운행 불가를 통보해 지금에야 이뤄진 것이다. 가마솥 밑이 노구솥 밑을 검다 한다는, 북한 속담에 딱 들어맞는 경우다. 그때 뒤통수를 되게 맞고 1년이나 묵묵히 기다렸는데 15분 때문에 몽니를 부렸다. 늦다고 흠잡는 사람들은 빨라도 타박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우리의 저자세다. 핵무기를 희롱하는 군사 대결에 비해 남북 철도가 아무리 섹시한 방법이라도 스스로 자존심 구기며 자괴(自愧)거리가 될 이유는 없다. 또 있다. 남북 열차를 마치 연애할 때 놀이공원에서 짜릿한 제트 코스터를 타는 걸로 착각할지 모르겠는데, 그런 두근거리는 기분을 남북 ‘당국자`만이 아닌 온 민족에게 전파되게 하라는 것이다.
남북 철도의 미래는 어떨까?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을 잇는 ‘철의 실크로드` 연결이 가능할까? 그 모든 키는 우리가 쥐어야 한다. 특히 돈 쓰고 쓰레기 치워주는 일은 삼갈 일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상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 했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말고는 오히려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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