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룬파, 동양 최대의 악당 샤오 팽으로 등장
더커진 무대… 배신과 배신이 거듭되는 스토리
전편 ‘망자의 함’에서 바다 괴물 크라켄의 입속으로 사라졌던 잭 스패로우. 그가 돌아왔다. 괴물의 뱃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사람치곤 상태가 양호하다. 너덜거리는 빈티지 패션에 드레드 머리, 눈가에 짙게 드리운 다크서클에 비척거리는 걸음걸이까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크라켄은 소화력에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돌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끝내기 위해서다. 돌아왔으되 다들 반갑지 않다는 눈치다. 엘리자베스(키라 나이틀리)와 윌(올랜도 블룸)은 물론이고 친숙한 블랙펄의 선원들조차 어떻게 살아났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 예고편에서 잭은 “그냥 내가 좀 보고 싶어서라도 구해줄 생각은 안 해봤나?”하고 투덜댄다.
잭의 귀환이 반갑지 않은 건 한국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영화 관객 10명 중 7명이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기꺼이 뛰어드는 판이다. 한국 영화 위기론이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잭이 가세한다면….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터무니없이 과장됐고 알츠하이머에 걸린 듯한”이라고 표현했던 비척대는 걸음으로 잭은 흥행가도를 질주해왔다. ‘블랙펄의 저주’ ‘망자의 함’ 두 편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16억5000만 달러. 그러니 3편 ‘세상의 끝에서’의 개봉이 걱정될 수밖에. 사람들은 대체 왜 이 비쩍 마른, 해적 같지도 않은(?) 해적에게 열광하는 걸까. 그 해답에 한국 영화가 위기를 벗어날 길이 있을지 모른다.
▶해적다워야 해적이지=‘망자의 함’의 마지막,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구해준 잭을 속여 희생양으로 삼자, 잭이 그녀에게 한마디 한다. “해적감이군.” 적어도 ‘캐리비안…’에서 해적다움이란 제 몸 하나 살기 위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당연하게 원칙을 어기는 걸 뜻한다.
과거 해적영화에서 주인공 해적은 해적의 옷을 걸친 영웅이었다. 그들의 해적질에는 불의에 맞선다거나 조국을 위해서라든가 하는 대의가 있었다. 무엇보다 명예를 목숨처럼 여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잭에겐 법 도덕 명예 따위는 애당초 없다. 비열하고 치사하고 뻔뻔하며 제멋대로인 이 해적은 과거 해적 영웅의 옷을 과감히 벗어던짐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제대로 된 해적으로 관객들에게 어필했다. 사람들이 해적에게서 보고 싶어 한 게 그거였다. 거창한 영웅과 모험의 세계가 아니라 해적이란 단어가 발산하는 무정부적인 일탈성을 마음껏 유희하고 소비하는 것.
매끄러운 특수효과, ‘신밧드의 모험’까지 끌어다 쓴 스토리는 둘째다. 관객의 생각을 읽고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걸 보여줘라. ‘캐리비안…’의 성공은 거기서 시작됐다.
▶‘세상의 끝에서’=윌과 엘리자베스는 낯선 세상, 싱가포르로 향한다. 샤오 팽(저우룬파)의 지도를 훔쳐, 크라켄에게 먹혀 데비 존스의 로커에 갇힌 잭을 구하기 위해서다. 세상의 끝에서 잭과 만나고 로커를 벗어난다. 한편 해적들을 말살해 해상 권력을 장악하려는 동인도회사의 음모에 맞서 전 세계 해적들이 싱가포르에 집결한다. 잭 일행은 고어 버번스키 감독의 말마따나 ‘배신과 배신이 거듭되는 스토리’에 휘말리게 된다.
스펙터클한 해전 장면 등 훨씬 화려해졌다. 활극의 강도도 세졌다. 3편의 주요 내용은 이미 2편에서 슬쩍 비쳤다. 악명 높은 해적 샤오 팽이 잭 일당과 거래한 건 뭔지, 잭의 아버지가 아들 앞에 나타난 이유, 윌은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지 등 입질만 해놓은 배신의 스토리가 더욱 커진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23일 개봉. 12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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