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모님을 위로하는 아이, 시험을 잘 보고 싶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고민된다고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쓴 아이, 항상 왕따를 조장해서 부모님을 힘들게 했지만 올해는 잘 해보겠다는 다짐을 쓴 아이 등 장난꾸러기 인 줄만 알았더니 마음은 훨씬 어른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술 시간에 만들어 둔 ‘카네이션 카드`와 함께 드리면 부모님들이 기뻐하실 것 같아서 뿌듯했다.
이번에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알고 싶었다. 사랑의 편지 쓰기 대회에 대한 안내장을 아이들 편에 보냈다. 안내장을 보내긴 했지만 오랫동안 펜을 놓으신 부모님들께서 편지를 쓰신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부모님께서 쓰신 편지를 받아오는 아이들이 거의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민정이, 솔이, 수진이, 서진이, 지연이의 어머니께서 편지를 보내 주셨다. 아마도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하기에 쓸 말이 별로 없기도 할 테고, 막상 편지를 쓰려고 편지지를 마주하고 있으면 할 말이 모두 사라지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테니 그 심정을 모를 리 없다. 더구나 ‘대회`라고 했으니 마음의 부담감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지다.
‘무슨 이야기를 쓰셨을까?`
아이들이 다 가고 난 뒤 호기심에 편지를 열어 보았다. 맞벌이 하는 엄마 대신 상을 차리고, 동생을 돌보는 수진이, 큰 딸은 아니지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민정이, 벌써 사춘기가 된 지연이, 다른 아이들보다 몸이 약한 서진이, 언제나 긍정적인 솔이…….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과 바람이 오롯이 들어 있는 편지 한 장!
‘아, 어머니!`
구구절절 써 내려간 편지 속에는 민정이의 어머니, 지연이의 어머니, 솔이 어머니, 수진이의 어머니, 서진이의 어머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가 있었다. 가까이 계시지 않아 자주 뵐 수도 없고, 전화하면 무뚝뚝하게 ‘밥은 먹었다니?`가 다인 우리 어머니. 밤 늦게 도착하는 딸 기다리느라 밥 안 드시고 기다렸다가, ‘점심을 늦게 먹어서 나도 안 먹었다` 하시는 우리 어머니.
용돈이라도 드릴라치면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치시는 통에 몰래 놓고 오게 하는 내 어머니.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왜 그랬느냐`고 다그치지 않고, 언제나 당당하게 살라고 당부하시는 내 어머니! 편지 속에 오버랩 되는 우리 엄마의 주름진 얼굴에, 나는 혼자 앉아 청승맞게 눈물을 흘렸다.
하얀 백지 한 장 마주하고 앉아, 볼펜 대신 굵다란 싸인펜 들고 내 어머니에게 못 다 한 말을 적는다. 짧은 들 어떠랴, 내 사랑하는 엄마는 나의 편지를 글이 아닌 마음으로 읽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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