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에 느티나무 세 그루를 중문 안에 심으면 세세손손 부귀를 누리며, 갑방(甲方:서남문)에 심으면 도적을 막는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렇게 나무를 심고 가꾼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연의 섭리를 헤아리는 지혜까지도 함께 일깨워 준다.
누구나 나무에 대한 크고 작은 추억 한 두개쯤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억을 지나가는 기억의 편린(片鱗)으로 지닐 것이 아니라 필연의 삶으로 간직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기념나무심기가 될 것이다. 출생, 입학, 졸업이나 취직, 결혼, 창립기념일 등에 나무를 심는다면 일생을 통해 아주 뜻 깊은 추억을 이어가며 생생하게 가꿀 수 있다.
아들이 태어나면 은행나무를 심는것은 어떨까? 은행나무는 장수의 상징이다. 성균관이나 용문사의 은행나무가 500~1000년의 장구한 세월을 지켜온 의연한 자태는 지금도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딸이 태어났다면 오동나무나 수양버들이 좋겠다.
옛날엔 딸이 태어남과 동시에 오동나무 몇 그루를 심었고, 그 오동나무가 자라서 혼수품이 되었다. 수양버들은 고려 태조의 왕후(고려 2대 혜종의 모후)를 탄생시킨 귀목이라고 하지 않던가! 졸업이나 취업을 했다면 살구나무가 적격이겠다. 살구꽃은 급제화라 하여 과거 합격이나 학업성취의 상징이다.
이루기 힘든 학위를 취득했다면 회화나무를 심어보자. 회화나무는 선비목(木), 학자수(樹)라 할 만큼 선비의 기품을 간직한 나무로 전해진다. 돌아가신 조상이 보고 싶고, 자식들에게 조상을 잊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면 대추, 밤, 배,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대추나무는 꽃 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 하나를 맺고, 하나의 씨를 갖고 있다. 그래서 임금을 상징한다. 대추가 제사상 첫머리에 놓이는 이유다.
밤은 땅 속에 씨밤이 생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가 나무가 자라 씨앗을 맺어야만 비로소 씨밤이 썩는다. 그래서 밤은 자신과 조상을 영원히 연결해 준다는 것을 상징한다. 한 톨에 보통 세 개가 들어 있어 삼정승을 뜻한다. 배는 씨가 여섯 개라서 육판서를 의미한다. 반드시 고염나무에 접을 붙여야 감나무로 성장해 열매가 열리는 감은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씨가 여덟 개이므로 팔도관찰사를 뜻한다.
이처럼 일생의 과정마다 뜻을 새기며 기념식수를 하고, 그 나무들과 더불어 수시로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한결 풍요로워 지리라. 또한 자신이 죽은 후 그 조상나무 아래에 수목장을 한다면 이보다 멋진 자연귀의가 또 어디 있으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의 의지나 단체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해 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의 뜻과 노력이 합해져야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대전시가 전개하고 있는‘숲의 도시 푸른 대전’을 위한 3000만그루 나무심기 운동의 성공 역시 전 시민의 참여가 뒷받침 돼야 한다.
기념으로 나무를 심으면 그 나무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아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에게 큰 사랑과 희망을 안기는 숲이 되고, 조상과 나, 그리고 후손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소중한 삶의 섭리를 깨우쳐 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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