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에서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스승님께 감사드리는 조촐한 예가 갖추어지는 오늘 스승의 날은 1958년 우리지역의 강경여고 RCY단원들이 현직 선생님과 병중에 계시거나 은퇴하신 선생님들을 위문하는 봉사활동으로부터 시작되어 1963년 청소년적십자충남협의회에서 충남도내 ‘은사의 날’을 정하여 추진하였으며, 이러한 뜻 깊은 행사가 중앙으로까지 확산되어 청소년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에서 스승을 위한 은사의 날을 제정하여 1964년부터 제1회 은사의 날을 지켜왔으니 올해로서 제44회 ‘스승의 날’을 맞게 되었다. 그야말로 한 학교로부터 시작되어 도단위를 거쳐 전국단위까지 순수하게 학생단체에 의하여 시작된 스승의 날은 정말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이러한 뜻이 충남에서 시작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예로부터 충청도를 충절의 고향이라 부른데는 다 연유가 있는 것이다.
작년에는 우리사회의 폐단인 촌지문제로 학교현장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스승의 날에 오히려 학교 문을 닫는 해프닝이 있었으며, 올해는 또 스승의 날을 2월로 옮기자는 의견이 교육당국자들로부터 나온다고 하니 정말 스승의 날을 만든 제자 학생들을 보기가 민망하다. 인터넷기사에서 읽은 어느 30대 엄마의 유치원 선생님께 드릴 스승의 날 선물고민, 스승의 날이 되어도 찾아갈 진정한 스승이 없다는 어느 여고생의 고백, 30년전 시골길에서 선생님께서 주신 가르침 한마디를 지금까지 가슴에 새기고 산다는 사연을 방송에 보낸 40대 아버지, 오래된 스승을 찾아준 제자들이 고맙다는 70대의 은퇴하신 선생님 등 참으로 사연도 많은 스승의 날이다. 어두운 면도 있지만 밝은 면이 훨씬 많은 스승의 날에 대하여 교육당국자들이 왈가왈부하기 보다는 원래 순수하게 스승의 날을 만든 학생들에게 맡겨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라 하였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스승은 아버지와 같이 엄하게 교육을 하는 입장이라는 뜻이고, 더 나아가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하여 스승을 부모보다도 더 존경하여 왔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정말 우리 국민이 대통령을 존경하고 어버지가 가정에서 존경받고 있는가?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가정에서 아버지가 아버지 역할을 잃어버린 지가 오래이다.
군사부 일체가 맞는다면 대통령이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듯이 또 우리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존경심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선생님들도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총체적인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성경은 자녀교육에 대하여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으리라” 고 가르치고 있다. 자녀교육 뿐만 아니라 제자교육 및 국민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른 복잡한 이해타산이나 의도 없이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고 행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군사부일체의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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