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논단]계룡산에 해탈문이 있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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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계룡산에 해탈문이 있었다는데

  • 승인 2007-05-10 00:00
  • 신문게재 2007-05-11 20면
  • 민찬 대전대 교수민찬 대전대 교수
“나는 어머님과 고모부와 함께 백정자에서 내렸다. 나의 짐은, 비가 올 것만 같아서, 내일 큰형님이 가지고 오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가방 두 개뿐이었다. 절에서 온 부목에게 가방 두 개를 지게에 지워 먼저 보내고, 우리는 양산 세 개만 가지고 동학사로 향하였다. 계룡산은 비가 오는지 어쩐지 구름과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연 바위로 된 해탈문으로 들어서서 고염나무 거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비가 어찌나 세차게 쏟아지는지, 양산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열국지’의 명번역으로 알려진 김구용 선생이 생애 40여 년간을 썼다는 ‘구용일기’를 읽다가 찾아낸 대목이다. 구용의 나이 열아홉 살이던 1940년 7월 1일자 기록이다. 일제 말 혼란한 시기에 징병을 피하고자 피란처로 삼았던 곳이 계룡산 동학사인데, 당시 공주에서 살던 구용이 지금의 박정자 삼거리까지 차를 타고 와서 내린 다음 학봉리를 거쳐 들어간 것으로 되어 있다.

박정자를 백정자로 부르는 것도 그렇겠지만 더 눈길을 끌어당기는 것은 해탈문, 그것도 이른바 ‘천연 바위로 된 해탈문’의 존재가 아닐까 싶다. 주말이면 대전 시민들이 수도 없이 동학사 계곡을 다녀오지만 해탈문이라고 할 만한 바위덩어리를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시 ‘구용일기’로 돌아가 보자.

구용은 ‘해탈문’이라는 단어에 뒤이어 괄호를 두른 뒤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아놓고 있다. “그 해탈문은 자유당 집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온대서 자동차 통로를 넓힌답시고 폭파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없다.”

일기의 내용대로라면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 부근이거나 아니면 불교회관이 들어선 자리, 더 올라가면 문수암이나 미타암 입구 어딘가에 바위로 된 그럴듯한 석문 하나가 떠억 버티고 서서 계룡산의 산격과 동학사의 사격을 높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대통령을 태운 차가 통과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없애버렸으니 성과 속의 경계가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자연의 유산을 제 발로 제가 차버린 그 미개함에 혀를 끌끌 찰 따름이다.

진잠에서부터 수통골까지 산장산과 빈계산의 능선으로 연결된다는 말을 듣고 가벼운 산행을 나섰다. 산장산 팻말이 일러주는 대로 조금 오르는가 싶더니 바로 능선으로 올라붙게 되었다. 발밑으로 지나가는 호남고속도로로 인하여 차량의 소음이 귀찮았으나 진잠 일대의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왔고 능선 반대편으로는 짐작한 바대로 성북동 골짜기가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가까이는 절 지붕의 기왓골과 한적한 앞마당, 멀리는 야트막한 구릉을 등에 대고 드문드문 형성된 자연마을들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산정산 능선을 빼곡히 채우고 서서 연신 꽃잎들을 나풀거리고 있는 산벚나무들 사이로 바라본 성북동 골짜기는 능선의 이쪽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그 만큼 자연이 보존된 청정지역이었다. 그런데 대전광역시는 여기에다가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다.

대전은 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다.
출퇴근길이 조금 더 길더라도 하상도로를 고집하는 것은 봄과 가을의 유채꽃과 억새풀, 그 사이를 오가는 백로와 청둥오리,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젊은이와 산책을 하는 노인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뿌리공원을 찾을 때면 “여기 어딘가 수달이 살고 있을 텐데”하고 봉소루 옆을 지나가다 보면 솔부엉이를 생각하게 되는 곳이 대전이다.

성북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호수가 있고 자연휴양림이 있고 산성이 남아 있는 곳이 성북동인데 그걸 기어이 ‘개발’하여야 하는지 묻고 싶다. 자연은 후손들에게도 물려줘야 하는 것. 50년 뒤 그들이 미개함 운운하면서 혀를 차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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