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초 시중 최승로(927~989)는 <창밖에서 우는 새야 / 어느 산에서 자고 다시 왔는가 / 응당 이 산중에 일을 알 터이니 / 진달래가 피었는가 피지 않았든가>라며 화신을 기다렸다. 이렇듯 봄꽃은 신비한 우주의 순환과 섭리, 질서에 대한 표징이다.
이런 패턴을 처음 문학비평에 도입한 학자가 프라이(Northrop Frye)이다. 그는 <신화비평은 문학의 종류와 양상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문학 그 자체의 구조적 원리가 재현되는 영상의 ‘원형(archetype)’에 대한 연구>인데 <원형은 쓸모없는 고대의 잔존물이거나 유물이 아니고 살아있는 실체고 심리적 형태를 물려받으며 나타난다>고 했다. 융(Carl Gustav Jung)은 <원형은 인류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데 이는 옛 선조들의 생활에서 반복되던 경험 형태들의 심리적 잔존물>로 사회적 행동양식에도 반영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충청인의 의식 속에는 어떤 ‘원형’이 살아 있는 것일까?
예산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불교미술사가요, ‘진경산수’로 한국화 연구의 새 길을 개척한 최완수선생. 선생은 충청도 의식 근간에는 ‘균형의식’과 ‘신질서’라는 두 가치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양 가치를 흔드는 세력에는 가차없이 대항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충청도는 조선 후기 의병이 가장 많이 항거한 지역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무수한 독립투사가 목숨을 던졌다. 또한 불교나 천주교를 가장 먼저 수용한 곳도 충청도다. 외세는 물론 한 시대를 지배하는 이념조차 거부하는 사람들이 사는 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충청도는 현대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무시당했다. 백제권 개발은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사회간접자본은 빈약하고 무엇 하나 속 시원한 구석이 없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인물이 없었다는 말은 잘못 짚은 것이다. 윤보선부터 중앙 정치의 중심세력에서 활약한 인물은 많다. 문제는 충청의 집단의식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사람들이다. 충청도는 선거 때면 캐스팅 보트를 쥐었다. 그러나 선거 후 충청도가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다시 ‘멍청도’니 ‘핫바지’ 미명하에 동원령을 발동한다.
손호철교수는 이미 10년 전에 ‘3김을 넘어서’자고 했다. ‘3김의 사당정치’ ‘3김의 지역분할독재’를 깨자는 주창이었다. 엄격하게 따져보면 바로 3김 정치의 최대 피해지는 충청도다. ‘패권적 지역주의’나 ‘저항적 지역주의’ 간에 ‘반사적 지역주의’를 표방한 충청도. 손 내미는 대로 붙잡아주고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최근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의 출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충청권 대권론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누굴 위한 정당인가? 봄꽃이 좋지 않았다고 계절이 거꾸로 가진 않는다. 싫든 좋든 지역주의 폐해를 경험한 충청의 민심은 바뀔 것이다. 어설픈 지역감정보다 참신한 정책이나 정강을 내세울 일이다. 최승로 시중의 말마따나 ‘응당 이 산중 일을 우리 모두 너무 잘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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