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필자는 노인을 주제로 TV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적이 있다. 주인공은 봉천동에 사시는 황 노인이었다. 노인은 매일 아침, 식사 후 집을 나선다. 지하철을 타고 노인이 가는 곳은 종로 2가 탑골공원. 친구는 아니지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공통의 화제를 나눌 수 있어 노인은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사회단체에서 배식하는 점심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면 오후 서너 시가 넘어선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날이 저문다. 노인의 생활은 그렇게 반복되고 있었다.
흔히 노년사고(老年四苦)라고 말한다. 첫째, 경제적 고통을 꼽을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어버이날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현금이라고 한다. 노인들에게도 그만큼 현금은 절대적이다. 둘째는 질병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이요, 셋째는 무료함으로 인한 고통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고독감이다.
황노인은 그런 면에서 보면 다른 노인들에 비해 비교적 행복(?)했다. 회사원 아들 내외가 약간의 용돈을 주고, 또 건강이 허락하니 매일 외출도 할 수 있으며 공원에서 지루하지 않게 시간도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촬영 기간 동안 취재팀과 매우 친밀해진 노인은 우리를 조심스럽게 관악산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남녀 노인들 수십 명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만남을 갖는 장소였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러고 보니 모두가 이성이 그리운 노인들이었다. “몸만 늙었지 마음은 지금도 청춘이야!” 그때 삼십대 후반의 필자는 노인에 대해 너무도 몰랐었다.
내년쯤이면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인구의 10%가 될 것이다. 이처럼 급속한 노령화 속도에 비해 우리는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사회적, 제도적 측면 뿐 아니라 가정에서 조차 노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식을 양육하느라 모든 것을 다 투자 했어도 은퇴 후, 경제력이 없으면 부모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핵가족화가 되고 소득수준이 늘면서 삶의 질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소득수준과 행복은 결코 비례하지 않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지금껏 자식사랑은 무조건적이며 맹목적이라는 말을 줄 곧 들어왔다. 이 말은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존속하게 한 무슨 공식과도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세대를 거듭할수록 가족의 형태는 변질되고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되어버린 지금, 노인 문제는 가정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적 과제임은 틀림없다.
과연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없는 것일까?
먼저 우리 가정에서부터 노년은 인간의 일생에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사람은 모두 늙는다. 지금 우리 가정의 늙은 부모님의 모습은 미래의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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