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세상에 그 이름만큼이나 큰 사랑이 있을까.
세상에 그 이름만큼이나 따뜻한 것이 있을까.
어머니란 이름은 내게 언제나 따뜻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일평생 단 한번이라도 자식에 대한 신뢰를 놓아보지 않으신 분,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가족을 품어내신 어머니의 그 놀라우신 힘과 열정에 늘 감탄할 뿐이다.
그저 자식이기만 했을 때는 모든게 다 당연한 것인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생선 한 도막을 놓고 당신은 나중에 먹겠노라며 하나 하나 가시를 발라 밥 위에 얹어 주실 때도 그저 그러려니 했었다. 나중에 드시겠지. 자식들에게는 두툼한 솜바지를 지어 입히시고 당신은 늘 얇은 무명 옷 한가지였을 때도 그러려니 했었다. 엄마는 춥지 않다. 나중에 해 입으시겠지. 하지만 긴 세월을 지나,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 보니 어머니의 말들이 가슴을 울려왔다. 괜찮다. 나중에...
어쩌면 자식이란 존재는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늙은 어머니가 아파 누워 계시자, 자식들이 모두 닭 몸통은 자신들이 먹고 닭발을 들고 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어머니는 닭 발만 좋아하셔. 생선도 머리만 돌려드리며 말한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머리 드세요. 그렇게 자식들은 어머니의 눈물이 된다.
고려 가요 사모곡이 생각난다. 호미도 날이지만 낫같이 들리도 없다며 아버지의 사랑도 크지만 어머니의 사랑처럼 지극하지 않다는 노래이다. 어버이의 사랑이 어디 비교 대상이 될 것인가마는 여성의 헌신성에 어머니란 이름이 더해지면, 그 사랑의 힘이란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어머니는 고된 농사일 중에도 자식 교육에 대한 신념을 버린 적이 없으셨고,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자식들에게는 늘 큰 뜻을 품으라 말씀 하셨다. 비록 산을 넘고 고개를 돌아 자전거로 통학을 해야했지만, 어머니의 말씀은 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깊고 푸르게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보며 난 어머니의 말씀대로 세상을 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어머니의 아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다. 길 가의 들풀들과 울창한 나무 숲, 이름모를 새들과 울퉁불퉁했던 황토길... 그 모든 것들조차 내겐 희망의 원동력이었고, 꿈의 지표였다.
인고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고, 자식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으로 함께 해주시는 내 어머니. 자식들의 생각이 아무리 깊다 한들 어머니를 따를 수 있겠으며, 그 사랑의 반이라도 갚을 수 있겠는지.
새싹이 돋아나는 봄부터 가을까지 어머니는 새벽 일찍 호미를 들고 나가셔서 동네 어귀의 풀들을 뽑아 골라 주신다. 잡풀이 많으면 진짜 잘 자라주어야 할 풀이나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시다. 이제는 그 사랑으로 연로하심에도 동네를 치우시고 쓰레기를 주우신다. 지금은 그것만이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믿으시면서.
해마다 오월이면 유성의 거리는 화려한 봄꽃들의 축제가 열리고, 넘실대는 이팝꽃 향기와 담록빛 나무들로 가득하다. 언제나 풍요로움의 상징이 되는 이팝꽃처럼 어머니의 사랑도 그렇게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머니. 당신의 자식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해주시고, 평생을 당신의 아들로 살아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 있어 당신의 아들임이 전 가장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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