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돌아오면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기 바빴습니다. 봄이면 진달래를 따서 입에 물기도 하고,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면 피리를 만들어 동구 밖으로 희망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동네 누나들은 흙 고운 자리에 주저앉아 공기놀이에 해지는 줄 몰랐고, 밤이면 할머니의 팔베개를 베고 혼곤한 옛날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곤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바쁠 것 같은 요즘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끼며 잠들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감상에 젖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처럼 자란 세대가 가슴이 더 따뜻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즈음 TV를 보기가 두렵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가슴이 차가운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온갖 사건들……. 사람들은 인터넷이 범죄의 주범이라고 지적합니다. 휴대폰이 없는 세상으로 가고 싶다고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문명의 이기들이 가슴의 온도를 낮추는 실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문명의 발달이 반드시 행복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고, 그 옛날 루소가 그랬던 것처럼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소리가 요즘 점차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반추해 보기도 합니다.
며칠 전 뉴스에서는 여기저기 상처 입은 아이들을 보여주면서 아이를 학대한 주범이 그들의 부모라고 하는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하였습니다. 그 기막힌 장면을 접하면서 걱정이 되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소식이 교육을 맡은 한 사람으로서 가장 가슴이 아픈 경우입니다. 사랑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면 가슴이 차가운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겠습니까?
학대받는 아이들이 이 아이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의 잃어버린 시간에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대부분은 ‘자유`라는 것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전전하다가 집에 오면 또 개인교수에 시달려야 하는 아이들. 저는 그런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치 속도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차량들을 보는 것처럼 아슬아슬해 집니다. 학대받은 아이들의 가슴 속 온도는 싸늘하게 식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식이란 것은 생각과 느낌이란 장치를 통해서 머리에 저장되어야만 가슴의 온도를 높일 수 있는데, 지식이 곧바로 머리로 골인해 버리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력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설사 판단을 한다고 해도 반칙에 무감각한 냉혈한을 만들지 않을까 겁이 납니다. 바로 교육이란 이름이 기계인간을 만드는 온상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지는 것입니다.
교육은 원래 ‘놀이`였다고 김재춘 교수(한국교육신문 논설위원)는 말합니다. 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세상의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온갖 질문을 다 하면서 배우는 것에 희열을 느끼고 몰입하던 아이들이 학교교육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공부를 ‘노동`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우려하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선생님들을 믿습니다. `재미있는 공부 만들기`를 위해 방학 중에도 땀을 흘리며 연수에 열중하고 계시고, 사재를 털어 제자의 생일잔치를 해 주시고, 간혹은 오지에 가서 자기를 희생하시는 선생님도 계십니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우리 선생님들! 그런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저는 교육에서 희망을 봅니다.
대전교육가족 여러분!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들이 따뜻한 가슴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래서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읍시다. 따뜻한 5월의 태양 아래 날로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처럼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 희망이 자라나게 합시다. 아울러 대전교육가족 모두에게 사랑과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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