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편견, 열린사회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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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편견, 열린사회의 적

  • 승인 2007-05-02 00:00
  • 신문게재 2007-05-03 20면
  •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미국의 <뉴요커(The New Yorker)>라는 잡지에 실렸던 퀴즈 하나. 끔찍한 교통사고로 운전하던 남성이 죽고, 그의 아들은 병원에 실려 갔다. 병원의 외과의사는 환자를 보자마자 “나는 이 아이를 수술할 수 없습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잡지에서 밝힌 답은 “외과의사는 아이의 어머니”다. 읽자마자 바로 답을 생각해낸 사람은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는 편이다. 약간의 뜸을 들여 답을 생각했어도 편견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한참을 궁리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의 자문을 맡은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 한 편에는 5명 안팎의 전문가가 등장한다. 한 여성 자문위원은 이 프로그램 한 달 치를 모니터한 결과, 전문가들 대다수가 남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청자, 특히 청소년들에게 ‘전문가는 남성’이라는 편견을 심어주지 않겠냐는 우려를 전했다.

여성만큼이나 세상의 편견에 시달리는 부류가 장애인이다. 마침 지난달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비장애인들은 언론을 통해 장애인들이 생활에서 체감하는 불편을 새삼 절감하고, 역경을 극복한 장한 장애인들을 접하며 눈시울을 적셨을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편견은 여전하다. ‘눈 뜬 장님’ ‘꿀 먹은 벙어리’ ‘벙어리 냉가슴’ 등 우리가 무심코 쓰는 표현에는 장애인을 무능력자로 치부하는 속내가 담겨 있다. 편견은 차별을 낳는다. 그것은 부당한 것이기에 장애인들은 이렇게 지적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최근의 미국 버지니아 공대 참사에서도 우리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편견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먼저 총기 난사의 당사자가 한국인으로 밝혀지면서 불거진 ‘배타적 인종주의’다. 이번 사건이 범인의 국적이나 인종, 민족과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미국 내 반한감정의 고조와 한미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다. 대통령은 세 번이나 사과했으며 누리꾼들은 감동적 애도 캠페인에 나섰다. 미국언론이 나서 이건 미국사회의 문제라고 정중히 타이를 정도였다. 그런데 만약 사건의 무대가 미국이 아니었다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상상도 하기 싫지만, 만약 우리 사회에서 그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면 어떤 파장이 일었을까? 배타적 민족주의는 ‘유색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우월적 차별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또 다른 편견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있는 정신질환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는 것이다. 실제 TV나 영화에서도 정신질환자는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인물로 묘사되기 일쑤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들은 여러 역학조사 결과,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보다 오히려 낮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는 것은 편견이다. 바로 이 때문에 정신질환자들은 치료가 된다 해도 사회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편견은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여러 인종과 민족 간의 ‘차이’를 ‘차별’로 전도(顚倒)한다. 차별은 다시 편견을 공고히 하는 부메랑으로 작용한다. 편견은 시대 변화의 걸림돌일 뿐이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의 사회진출이 눈에 띠게 늘고 있으며, 후천적 장애 발생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우리 모두가 잠재적 장애인인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미 이주노동자 50만 명, 국내 거주 외국인 100만 명, 국제결혼 비율 18%에 이르는 다민족, 다문화 환경에 접어들었다. 가부장적 남성주의와 장애인 차별주의, 인종적 순혈주의와 같은 닫힌 사고는 열린사회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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