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성수대교 연이은 붕괴
부실공사로 얼룩진 90년대
▲ 김만구 대한건설協 대전시회 사무처장 |
우리나라는 70년대 급격한 경제 성장기반이 마련되면서 기반구축과 도약기를 벗어나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80년대 초반은 정치·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제5차 경제개발계획이 발표돼 고속도로, 댐, 신도시건설 등이 활발히 추진됐고 주택정책도 주택공급의 확대와 주택가격의 안정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주택시장과열로 규제조치라는 극약처방을 자주 쓰다 보니 오히려 부동산 투기라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정부의 졸속대책이 부동산 시장 기초를 안정화시키는 데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부동산 투기만 조장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임대주택건설에 적극 나서면서 84년 임대주택 건설촉진법을 제정하여 20만호 임대주택건설계획을 세웠지만 부동산경기 침체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지만 당초 예상보다 경제여건이 일찍 호전돼 과천 정부제2청사 건설과 함께 분당과 일산, 평촌, 산본 등 수도권의 거대신도시가 건설됐다. 전국적으로 도시화 물결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중동에 진출했던 우리 건설업체들이 80년대 유가 폭락사태로 대거 귀국과 함께 새로운 공법과 축적된 기술이 국내로 U-턴되어 내수 건설산업이 호황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 저력을 바탕으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돼 세계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국가의 위상이 높아졌다.
80년대 후반 200만호 주택건설정책과 함께 부동산 시장의 영역이 다변화되면서 분당 신도시가 우리나라 도시계획과 주택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주택문제해소에서 주거수준의 향상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면서 쾌적한 주거공간을 원하는 수요자의 욕구에 맞춰 녹지 공간 확충 등 친환경 아파트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대전도 역전지하상가, 가장교 및 홍도육교건설 등 대형토목공사가 활발히 추진되었으며 변두리지역 토지구획정리가 마무리되면서 서서히 고층아파트 등장과 함께 아파트 선호의 부동산 열기가 달아올랐다. 부동산 투자가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싹트게 된 것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성숙기를 맞이하면서 3만개 이상의 건설업체들이 늘어나고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여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지만 `빨리빨리` 조급증 문화와 함께 파생된 부실관리로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등 연이은 사고로 부실공사의 오명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또한 난개발로 인한 환경문제가 대두되고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용어가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본격 사용되기 시작했다.
도시가 회색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환경론자들의 우려와 함께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서로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둔산 신도시개발이 착공되고 93대전엑스포 개최지 확정 등으로 설레임속에 90년대 새로운 대전의 지도가 달라졌다. 3대하천 정비와 함께 푸른대전 만들기가 싹트기 시작하면서 현재에는 많은 독지가들이 3000만그루 나무심기에 동참하는 등 2030년 푸른 낙원속에서 대전올림픽을 유치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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