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증오가 있어야 화해도 가능
순해진 김기덕 그래도 할말은 한다
“증오가 들이마시는 숨이면 용서는 내쉬는 숨이다. 미움이 날숨이면 이해는 들숨이다. 질투가 들숨이면 사랑은 날숨이다. 이렇게 숨 쉬다 보면 물과 기름도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숨이 막힐 때까지 증오하고 용서하고 미워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설명처럼 ‘숨’은 욕망과 감정의 뒤얽힘을 호흡을 통해 이야기한다. 증오와 용서, 미움과 이해 같은 감정들은 양극단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감정들이 하나로 섞여 경계가 사라지는 걸 꿈꾼다. 그는 영화 안에서 점차 현실이라는 테두리를 지워나가면서 그 꿈이 실현 가능한 지점들을 발견해 나가려고 한다.
사형수 장진(장첸)은 자살하려 하지만 미수에 그친다. 남편의 외도에 충격을 받은 연(박지아)은 우연히 TV에서 그의 소식을 접하고 교도소로 향한다. 연은 장진을 위해 사계절을 선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연은 죽음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던 장진에게 삶의 의욕을 다시 불어 넣는다.
장진에게 남겨진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담겨진다. 연은 계절 빛으로 벽을 온통 도배하고 그 계절에 맞는 노래를 부른다. 연이 부르는 노래는 이 영화가 상처받은 인물들을 어루만지는 방식이자 김기덕 감독이 14번째에 이르러 터득하게 된 또 하나의 치유의 경지로 보인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장첸의 연기가 눈부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반복되고 겹쳐지는 이미지들을 그냥 그 자체로 즐기시길. 과거의 영화와 달리 ‘숨’은 화법도 쉬워졌고 웃음도 깊이도 있다. 관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여유가 묻어난다. 김 감독은 화해의 손을 내밀고 있다. 청소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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