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낮술 한 모금, 밤술 두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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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낮술 한 모금, 밤술 두 모금

  • 승인 2007-04-25 00:00
  • 신문게재 2007-04-26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잔(盃)이란 그릇이 아니라는(不皿) 뜻이고, 잔(盞)이란 글자는 창(戈) 두 개를 그릇(皿) 위에 얹어 서로 다툼을 경계한 것이지. 죽음을 따르는 것(從卒)이 취함(醉)이고 삶에 속하는 것(屬生)이 술깸(醒)인 것이지. ―연암 박지원


낮술이 더 취하나 밤술이 더 취하나, 하는 것이 쓸데없이 도마 위에 오른다. TV에서 크게 비쳐지는 걸 보고는 술배 고픈 어느 PD가 또 발동이 걸렸구나 하고 생각했다. 논쟁이랄 것도 없이, 당장 오늘 점심에라도 낮술 먹으며 화두에 올릴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얘기라는 뜻이다.

두결식(頭結式)으로, 결론부터 말해 이 논란거리는 쉽게 종식될 사안이 아니라 단언해도 좋다. 확신하는데, 오늘도 낮술이 센가 밤술이 센가를 시험하기 위해 마시는 사람이 있다. 실험쥐 사례가 어쩌니 알코올 감수성 강한 저녁 술시 술발이 저쩌니 유식을 떨기도 할 것이다. 술 먹는 이유야 무궁무진하지만, 하고많은 구실 중 하나라도 빠지는 걸 주당들이 원치 않는다.

낮술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조선조 막말이 수백 년을 살아 아직껏 안주처럼 씹히는 걸 보라. 단숨에 마시는 ‘일거(一去)’라는 원샷 주법은 신라시대 고문헌에도 나온다. 공술에 술 배운다는 말이 통용되며, 빈 잔에 눈물나고 한 잔 술에 웃음 난다며 권주가는 계속된다. “한 잔 하자”는 전화 끝 멘트, “딱 한 잔만”이 인사말 “안녕”을 대체하고 있다. 봄날이 좋아도 궂어도 한 잔. 선거에 이겨서 한 잔, 져도 한 잔. 가을비는 떡비라니 한 잔, 겨울비는 술비라 해서 또 한 잔.

약값은 턱없어도, ‘술값 천 년, 약값 만 년’에서 술값 부분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국은 여름같이 먹고 술은 겨울같이 먹으라는 둥, 관련 속담만 좋이 100개는 넘는다. 광산 김씨의 술이요, 은진 송씨의 떡이다, 이는 논산 연산 김씨의 술맛이 좋고 대전 회덕 송씨의 떡맛이 유명하다는 옛말이다. 근거 없는 속설도 많다. 술은 술로 푼다며 먹는 해장술이 몸에 나쁘고 낮술이건 밤술이건 과하면 좋지 않다는 것만은 사실이고 명백한 진실이다.

마실수록 술이 는다는 것도 어느 단계부터는 잘못된 속설이다. 자주 마신다고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효소가 늘지는 않는다. 넘어서는 안 될 선 같기도 한 낮술은 그러나 음주근무, 음주사고로도 이어진다. 해장술과 낮술은 신체 장기에, 밤술은 뇌에 더 영향을 미치지만, 속도나 느낌의 차이이지 낮술이 밤술에 비해 강하다고 볼 근거는 여전히 미약하다.

술꾼들은 이 대목에서, 언제 ‘의학’ 생각해서 술 마셨더냐, 이태백이 언제 맞돈만 내고 술 먹었다더냐며 술잔 높이 추켜들지 모르겠다. 술때를 알고 우는 술당나귀도 아닌 주제에, 외상 술값 억지 쓰듯 붓방아 찧어봐야 무소용(無所用)하다는 걸 안다. 누구보다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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