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업 충남과학고 교감 |
계룡산 갑사의 영규대사 추모시비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1592년 왜구가 조선을 침략했을 당시의 전쟁 상황이 훤히 보이는 듯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승병장인 대사의 애국심에 대한 감동과 동시에 어떤 비애가 느껴지곤 한다. 다소 과장이야 있겠지만 빗발치는 조총 총알을 변변한 무기 하나 없이 몸으로 막아가며 싸울 수밖에 없었던 당시 의병들의 전투 장면을 그려보면 안타깝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우리의 희망! 과학기술인, 우리의 자랑!’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과학기술부가 내건 슬로건이다. 각 학교에서는 이 슬로건을 교문에 내걸고 과학과 관련된 각종 행사를 개최하고 유명 과학자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기도 한다. 이를 통해서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우수 인재들의 이공계 진학을 장려하려는 것이다. 시대적 국가적 요구를 반영하여 해마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이 슬로건은 과학과 국가발전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어서 보기에 따라서는 과학교육의 목적이 국가발전에만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국가에서 정한 학교 과학교육의 주된 목적은 학생 개개인의 과학적 잠재능력을 계발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과학 공부를 하면서 갖추게 되는 탐구능력으로 생활에서 부딪히는 갖가지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학교육의 직접적인 목적이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같은 거시적 목적은 개인의 과학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얻는 간접적 효과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어쨌든 우리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지금처럼 국제 경쟁에 당당하게 나서게 된 것은 무엇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 발전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공이 아닌가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실험을 시켜주기 위하여 애쓴 과학 선생님들, 우수한 과학기술인 양성을 위하여 관심을 기울인 행정가들, 그리고 평생을 연구에 헌신한 과학자들이 오늘의 국가발전을 이끌어 온 것이다. 이제는 행정가들 뿐 아니라 정치가들까지도 과학교육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나서는 시대가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총에 맞서서 장삼을 방패삼아 싸우시다 입적하신 영규대사님도 기뻐하실 변화라면 지나친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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