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빈 대전고등법원장 |
2. 오래전 일이지만 “법대로”를 유난히 강조하신 법무장관이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반정부(反政府) 시위가 한창 일어나고 국회에서 검찰의 과잉대응을 질타하는 고성이 터져나와도 꿋꿋하게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해서 “법대로 장관(長官)”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하였다. 당시에는 다소 무책임하게 비치기도 하였지만 법을 존중하고, 법질서를 수호한다는 의지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어느 국가나 사회가 선진화하였는지 가늠하는 척도는 “법과 원칙”이 잘 지켜지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법은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직(硬直)된 법조문에 매달리다 보면 불합리한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특히 재판과정에서 법률요건만을 엄격하게 따져 판결을 내리는 것이 우리의 윤리관이나 정의감에 맞지 아니할 때에 법관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하는 것이지만 이를 실제 분쟁사건에서 해석, 적용하는 권한은 법원에 속하기 때문이다.
3. 재판과정에서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라고 항의하는 당사자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정말로 법을 몰라서라기보다는 법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경우가 많다. 이런 당사자들은 결국 판결에 불복하고 상소를 하게 되며, 끝내 판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가슴속에 법에 대한 한없는 원망(怨望)의 마음을 가득 채운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또한 “유전 무죄, 무전 유죄”를 외치며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건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해자인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피해변상이나 합의를 하지 못하여 정상이 나빠져 형을 선고받은 결과가 된 것인데 이는 결국 자신의 범죄 탓이지 무전(無錢)이 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줄 필요가 있다.
4. 법관(法官)을 운동경기의 심판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나는 법관은 단순히 경기를 규칙대로 진행하는 심판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심판은 단지 경기 도중 감독과 선수들이 규칙을 위반하는지를 감시하고 득점결과에 따른 승패만 선언하면 되는 것이지만, 법관은 시종일관(始終一貫) 재판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실체적 진실발견과 정의(正義)에 합당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주체(主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을 법전(法典) 안에 누워만 있게 해서는 안되고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그리고 국민의 가슴 속에 항상 살아 움직이는 법이 되게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관은 법정(法廷) 안에서 “법대로” 재판만 하여서는 아니되고 국민에게 다가가 법을 알리고 이해시키며,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극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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