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대전 위기 CIA 최대음모 시작
그 이름만으로도 영화 팬들에게 믿음을 주는 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두 번째 연출작 ‘굿 셰퍼드’를 내놓았다. 어느 CIA 요원의 비밀스러운 삶을 쫓으며 논쟁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누가, 어떻게, 국가를 위해 선한 목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굿 셰퍼드’는 2시간 4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장중하게 그리고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섬세하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국 첩보기관의 이면과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미국중앙정보국(CIA)에 드리운 베일은 CIA와 그 전신인 미국전략사무국(OSS)에서 활약한 정보요원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한 꺼풀씩 벗겨진다. 지루하진 않다. 빠른 편집과 간결한 묘사, 압축적인 설명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
영화는 흑백으로 비춰지는 침대 위 섹스 신으로 시작한다. “내 곁에 있으면 안전해”라는 여자의 목소리도 함께 깔린다. 감독은 왜 이 장면을 오프닝 시퀀스로 선택한 것일까.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민주주의와 국가를 위해 사랑과 가족을 희생한 한 남자의 개인사, 가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감독 로버트 드 니로는 장르로서의 첩보물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말하고 싶어 한 건 아버지와 아들을 중심에 놓고 전개되는 가족간의 갈등이다.
시간은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문가 출신으로 예일대 재학생이던 에드워드는 ‘해골단’(Skull and Bones Society)이라는 비밀단체에 가입한다. 미국 정부는 OSS를 창설하고 해골단 멤버들을 스카우트한다. 에드워드도 합류하고, 문학을 꿈꿨던 사내는 온갖 비밀과 음모 협잡으로 둘러싸인 첩보의 세계로 빠져든다. 가족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신분과 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또 항상 의심해야 하는 삶. 자신이 국가를 위해 정당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는 ‘선한 목자’라고 믿는 에드워드는 KGB와 내부의 적, 그리고 가장 힘든 적, 가족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
에드워드가 엘리트 비밀요원으로 경력을 쌓아 갈수록 아들의 얼굴도 모른 채 처자식과 떨어져 일에 몰두하는 그에게 아내와 아들의 불만도 쌓여만 간다.
애국심과 국익을 지키는 것이 ‘선한 목자’인가, 가족과 가정을 지키는 것이 ‘선한 목자’인가. 에드워드는 상관에게, 동료에게, 가족에게 심지어 어려서 자살한 아버지에게조차 배신당한다.
로버트 드 니로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영화에 비치는 것은 허황된 국가 및 집단의 이데올로기에 몰락하는 미국 백인 주류계층을 향한 옅은 냉소다. 흥미롭고 극적이며 묵직하다.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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