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잔잔한,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
박광수 감독의 시선은 낮은 곳에 있었다. 그는 소외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그들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아픔과 드리운 어둠을 서슴없이 드러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사회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재수의 난’이 흥행에 물먹은 지 8년, 박광수 감독이 돌아왔다. 그런데 ‘눈부신 날에’는 사회파라고 하기엔 아주 낯설다. 오랜 칩거 끝에 들고 온 영화가 하필 가족영화였을까, 투항이냐 변신이냐, 고개를 갸웃하는 영화팬들의 반응도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파 감독의 변신이 아쉽다는 심정도 담겨 있을 것이고.
‘눈부신 날에’는 보기에 따라 사회파 냄새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월드컵 응원전이 뜨거운 거리. 한 남자가 대형 스크린 앞으로 뛰쳐나와 열정적인 응원을 펼친다. 알아주는 사람은 없지만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사는 딸아이 준의 소원을 들어주려는 아빠 종대의 절규다. 딸은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숨을 거둔다. 2002년 월드컵은 종대와 준 부녀의 사랑이 극적으로 만나는 동기이자 배경이다. 동시에 시민들의 환희와 열정에 병원 가는 길이 막혀 울부짖는 종대를 보여줌으로써 다수의 행복에 동화될 수 없는 소외된 소수의 아픔을 장면화 한다.
영화는 아버지와 딸의 눈물겨운 사랑을 구성진 리듬으로 진행시킨다. 시한부 삶을 사는 아이의 아빠 찾기와 철모르고 살아온 돈키호테가 딸과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충돌시키고 비틀고 화해시킨다. 그리고 묻는다.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가.
‘아빠의 딸’의 이야기는 다분히 상투적이고 도식적이며 신파 냄새도 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도식성과 신파는 오히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감독의 의도처럼 보인다. 신파를 넘어 구원의 아우라를 점유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특별한 선택처럼 느껴질 정도다. 영화 후반 보는 이의 마음을 우직하게 파고드는 진정성은 영화의 숱한 단점들을 메우고도 남을 만큼 힘이 있다.
눈부신 날은 언제일까. 햇살 가득한 해변에서 투우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짧은 장면일까. 시민들 앞에서 응원을 펼치는 종대의 마음일까. 아니면 딸의 눈을 이식받아 보게된 눈부신 날인가. 그리하여 감독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음을 역설한다. 왜 가족영화로 갔는지 행보의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비판적인 관점으로 한국사회를 조망하던 그의 시선은 그대로다. 탈색되지 않았다.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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