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정신은 헌신적이고 순수함이며 낭만과 용기를 가진 학생들이 자기 희생으로 독재정권을 붕괴시키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학업에 매진하는 한국인의 고귀한 정신과 용기를 전 세계에 과시한 위대한 청년 정신이었다.
4.19혁명은 1960년 3월15일 실시될 예정이었던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선거에 여당인 자유당이 이승만과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온갖 부정을 자행 한데서 촉발됐다. 경찰과 공무원이 선거 운동에 동원되었고, 학생들을 야당의 선거 유세장으로 가지 못하도록 일요일에도 등교시키고 서울 신문을 강제 구독하게 하며, 엄청난 선거자금을 뿌리면서 야당을 탄압했다.
이런 시점에 2월28일 대구에서 전국 최초로 경북고, 대구고, 대구사대부고 등이 중심이 된 학생 데모가 일어났다. 자유당 정권의 횡포에 반기를 들어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왔으며 정부의 학원 탄압을 규탄하였다. 3월8일 대전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민주당 유세 시간에 맞춰 일제히 거리로 나서 독재정권을 타도하자는 시위를 하게 된다. 경찰은 무자비하게 학생들을 해산 시켰고, 이 과정에서 경찰의 저지를 받던 학생들이 시내 일원으로 흩어져 학원 민주화를 외쳤고 수십 명의 학생들은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이틀 후인 3월10일 대전상고 학생 1000여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데모를 하였으며 3월 15일 마산 고등학교에 이어 4.19 혁명 때까지 학생시위는 계속되었다. 2월28일 대구의거는 일요일인데도 등교하라는 관계 당국의 반발로 일어난 항거였다면, 3월8일 대전 의거는 진정한 학원 민주화와 부정부패와 독재에 항거해 자발적이며 헌신적인 순수한 학생들의 정의감에서 시작된 4.19혁명의 단초였다. 충절의 고장인 충청도에서 그 후손들이 청년 정신과 선비 정신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4.19혁명은 불손 세력이나 외세의 사주에 의한 것이 아니고 정의감의 발로 속에 부정과 불의에 항거한 민족정기의 표현이다. 부정 축재자와 부정선거를 조작한 주모자와 발포 책임자를 색출. 처벌하고 정부통령 선거를 다시 해야 하며, 학원의 정치 도구화를 반대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배우고 있던 학생들의 순수한 이념적 행동이었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면면히 이어온 백의민족 본연의 민주주의가 청년학생들을 통하여 먼저 발로되었으며 억제할 수 없는 자유, 자주, 자율에 의하여 타오른 순결무구한 외침이었다. 터져 나오는 이성의 섬광과 타오르는 의분의 불길은 탱크와 총칼로도 막을 수 없었다. 우리 손으로 이루어낸 4.19 정신을 21세기 달라진 상황 속에 미래를 개척하는 정신적 유산으로,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4.19 혁명이념의 실천은 계속되어야 하는 바 이는 아직도 정치적 혼탁과 경제의 혼란 ,학원의 부조리, 대학입시문제, 방황하는 학생들, 통일정책의 이념적 갈등 등이 수없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의로운 기상과 숭고한 4.19 정신이 계승되어 아직도 어둠이 남아 있는 이 시대의 구석구석을 밝히는 타오른 횃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4.19 혁명 47주년을 맞아 상의자, 유공자들에 경의를 표하며 먼저가신 성스런 임을 위한 묵념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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