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익순 한국전례원 前 충남지원장 |
예전에도 그랬듯이 곡우가 되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하기 위해 볍씨를 담근다. 서해에서는 흑산도 근처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떼가 북상해 격렬비열도 근처까지 올라왔다고 한다. 자연히 조기잡이로 북적거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무렵은 또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다.
전남`경남`경북`강원도 등지에서는 깊은 산속으로 곡우물을 먹으러 가는 풍속도 있었다. 자작나무`박달나무`산다래나무 등에 상처를 내고 통을 달아 며칠씩 수액을 받아두었다가 마셨다. 지금도 몸에 좋다고 하여 약수로 마시기도 한다.
지리산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곡우에 약수제를 지냈다. 조정에서 파견된 제관이 지리산 신령에게 다래차를 올리며 태평성대와 그 해의 풍년을 기원했다고 전한다. 모두 사계절 순환에서 진행되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어느 시인은 ‘봄’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없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동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고 너는 더디게 온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뜻은 봄이 왔어도 봄같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겨울의 시린 바람앞에 놓여 있다.
바로 경제한파다. 경제한파는 여러가지다. 유가급등 `내수침체` 수출감소` 대기업의 회계부정 `북핵과 이에 따른 여파…. 모진 바람을 견디지 못해 많은 이들이 차디찬 얼음바닥에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모두들 봄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봄은 동구밖에서 딴짓만 부리며 해찰해 얄밉기만 하다. ‘다급한 사연’ 전할 ‘바람’은 부는지, 또 불면 강도는 어떨까 궁금하다.
올해는 요 근래에 비가 내렸다. 흡족하지는 않지만 곡우를 전후해 봄비가 내려 대지를 촉촉하게 적셨다. 농가에서는 벌써부터 일손이 바쁘다. 삐죽 내민 가로수 어린잎이 더욱 윤택하다고 느끼고 싶다.
이를 받아들이는 마음도 덩달아 풍요로워 지기를 바란다. 곡우를 전후해 내린 봄비를 해찰하는 ‘봄’을 깨우는 전령사로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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