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중. 해리가 샐리에게 한 말.
한나라 여태후, 당나라 측천무후와 나란히 중국의 3대 악녀에 드는 은나라 달기가 형장에 끌려가는 모습도 봄비 흠뻑 적셔진 배꽃 같았는데, 망나니들이 그만 그녀의 미색에 질려 칼 든 팔이 마비됐다나 어쨌다나 하는 ‘류(類)’는 역사의 치맛자락을 들추면 한도 끝도 없다.
내친 김에 ‘비 안 맞은 배꽃’으로 이미지 작업중인 매창 얘기를 슬쩍 담배씨만큼만 공개하려 한다. 황진이와 쌍벽을 이루는 기생이자 시인. 매화꽃 핀 창가(梅窓)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배꽃이 왠지 어울리는 그녀의 행적을 파헤치고 다니느라 개인적으로 바쁜 일과가 빠듯해지고 있다. 포인트는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자유주의자 허균과의 ‘섬씽’.
아니, ‘섬씽’이라면 가당찮고, 현대식으로 접근해서 남성의 80%가, 여성의 90%가 불가하다고 단언하는 이성간의 우정 말이다. 둘은 순수하게 못 봐주는 주위 시선을 의식하느라 일부러 참은 경우도 아니었고 연인에서 친구로 건너뛴 사이도 아닌 전설 같은 그 무엇이 존재했다.
매창은 일부종사의 의리 따위 챙기기 않아도 될 기생이다. ‘청루의 골목길에 열두 명의 아가씨들이 일제히 돌아보며 봄바람에 미소짓네.’ 이런 글로도 미뤄 허균은 또 정이 넘쳐나 부단히 나눠줘야 했던 연애 9단이다.
선천성 애정과다 남성인 허균과 후천성 애정결핍 여인인 매창. 두 사람이 남녀를 뛰어넘어 애틋한 벗이 되기까지는 무슨 곡절 있었을까. 술 마시고 거문고 타며 도담(道談)만 통했을 리 만무한데 잠자리만은 결코 한번도 통하지 않았다는, 이 기막히고 중요한 사실에 대해 시간이라는 알레고리의 더께를 벗겨보려 한다.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날, ‘안과 밖’에도 고할 것이다.
“그 시절에 만일 한 생각(일념)이 잘못됐더라면 나와 그대의 사귐이 10년이나 이토록 가까이 올 수 있었겠소.… 어느 때나 만나 하고픈 말을 다 할는지 종이를 대하니 마음 서글프오.…”
지금, 황사비 틈새로 매창이 ‘울며 잡고 이별’하던 배꽃비(梨花雨)는 내리고, 허균이 매창에게 보낸 짤막한 편지 한 통은 더욱 전의를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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