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논단]TV 사극의 영웅본색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금요논단]TV 사극의 영웅본색

  • 승인 2007-04-12 00:00
  • 신문게재 2007-04-13 20면
  • 민찬 대전대 교수민찬 대전대 교수
▲ 민찬 대전대 교수
▲ 민찬 대전대 교수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하거나 주변에 귀찮은 사람이 생길 때 지나간 시간 속으로 뒷걸음질치는 버릇이 있다. 역사서를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답답증이 해소되거나 운이 좋아 해결방도까지 얻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대만 사람 백양(柏楊)의 ‘맨얼굴의 중국사’도 그렇게 해서 손에 잡은 책이었다. 5권짜리 분량을 읽어내느라고 시간투자가 있었지만 다종다양한 군상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이자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역시 그 나라는 영웅도 많았고 엉터리들도 많았다. 명나라의 어느 군주는 스물 몇 해 동안을 조회 한 번 열지 않았다고 하니, 그래도 나라가 굴러간 것을 보면 재미있고 희한한 나라가 또 중국이었다.

그러나 역시 눈길을 끈 것은 역대 제왕들 중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들이었다. 한고조 유방, 당태종 이세민, 그리고 청나라 강희제 등이 그런 인물들이었는데 그 중 꼭 한 사람을 꼽아보라면 그래도 당태종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북방의 피를 받은 용맹한 군주는 뛰어난 명신들의 보좌를 받으며 자신감과 결단력,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내치와 외치 모든 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겨놓아 ‘정관의 치’라고 후세사가들의 한결같은 칭송을 받았다. 명신들의 보좌도 결국은 그의 용인술에 기인한 것이로되 그러나 그도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동방의 강국 고구려를 어찌하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중국발 외신은 한국의 TV 사극이 당태종을 아둔한 군주에다가 애꾸눈으로 묘사하였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SBS의 ‘연개소문’과 KBS의 ‘대조영’이 고구려 정벌에 나선 당태종을 안시성 싸움에서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되고 참담한 실패 후 퇴각하게 되는 인물로 묘사하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홍콩, 대만까지 가세하여 당태종 모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고대사를 둘러싼 한중간의 충돌이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동북공정으로 야기된 고대사 침탈의 문제가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된다.

사극을 사극으로 보면 그것이 사서가 아닌 바에야 허구의 개입이 있다고 하여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소비대중의 위력이 날로 성해지는 시대, 그리하여 시청률이 평가의 주된 기준이 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소비자인 시청자의 관심과 기호에 맞추는 것 자체가 시장의 논리에 해당하는 일이고, 더욱이 소비자가 생산자의 역할까지 떠맡는 프로슈머의 출현을 예고하는 이 시점에서 사극을 향하여 학문적 엄밀성을 운위하기는 곤란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 사극을 평범한 시정의 홈드라마와 같은 반열에 놓고 처리하기도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내용 여하에 따라서는 역사왜곡의 논란을 불러 일으켜 개인간, 집단간, 국가간 갈등의 국면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제10편 ‘고구려 대당전역’에는 연개소문, 양만춘, 추정국, 당태종, 설인귀 등 고구려와 당나라의 영웅호걸들이 펼치는 안시성 전투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다. 거기서 당태종은 왼쪽 눈을 화살에 맞고 말이 진흙에 빠져 포로로 잡히기 직전 설인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돌아가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되 광개토왕과 단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후속 사극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고대사를 다루는 사극인 경우 ‘퓨전’도 좋고 ‘팩션’도 다 좋으나 대중문화의 흐름이 턱없는 민족주의의 함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당태종도 중국인들에게는 충분히 존경을 받을 만한 그러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내 아기 배냇저고리 직접 만들어요"
  2. "우리는 아직 청춘이야"-아산시 도고면 주민참여사업 인기
  3. (주)코엠에스. 아산공장 사옥 준공
  4. 아산시인주면-아름다운cc, 나눔문화 협약 체결
  5.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큰 기도회
  1. (재)천안과학산업진흥원, 2024년 이차전지 제조공정 세미나 개최
  2. 천안문화재단, '한낮의 클래식 산책-클래식 히스토리 콘서트' 개최
  3. 충남 해양과학고 김태린·최가은 요트팀 '전국체전 우승'
  4. 천안시,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대응 총력
  5. 천안시, 직업소개사업자 정기 교육훈련 실시

헤드라인 뉴스


`15억 원 규모 금융사기`…NH농협은행서 발생

'15억 원 규모 금융사기'…NH농협은행서 발생

NH농협은행에서 15억 원대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NH농협은행은 25일 외부인의 사기에 따른 금융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사고 금액은 15억 2530만 원, 사고 발생 기간은 지난해 3월 7일부터 11월 17일까지다. 손실 금액은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해당 차주는 서울의 한 영업점에서 허위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하고 부동산담보대출을 과도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은 이번 사고가 외부인에 의한 사기에 따른 것으로 보고, 수사 결과에 따라 형사 고소나 고발을 추가로 검토할 예정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수사기관..

이장우 대전시장 "유성구 트램으로 더 발전 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 "유성구 트램으로 더 발전 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은 자치구 방문행사로 대전 발전의 핵심 동력인 유성구를 찾아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을 통한 유성 발전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25일 유성구 청소년수련관에서 정용래 유성구청장과 구민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선 8기 2년간의 성과를 공유하고 자치구 현안과 구민 건의사항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다. 이 시장은 28년만에 착공을 앞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사업을 설명했다. 이 시장은 "시에서 했던 일들 중 가장 무기력했고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고 평가받던 도시철도 2호선 사업이 기본계획이 수립된지 28년만인 다음달 말..

충청권 기름값 2주 연속 오름세 `이번주가 가장 싸다`
충청권 기름값 2주 연속 오름세 '이번주가 가장 싸다'

충청권 기름값이 2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했다. 특히 다음 달 유류세 인하 폭 축소가 예정되면서 운전자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27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10월 넷째 주(20∼24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직전 주 대비 리터당 1.47원 상승한 1593.06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경유도 0.83원 오른 1422.31원으로 나타났다. 10월 둘째 주부터 2주 연속 상승세를 보이지만, 상승 폭은 다소 둔화됐다. 대전·세종·충남지역 평균가격 추이도 비슷했다. 이들 3개 지역의 휘발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4 전국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대회 ‘성료’ 2024 전국 어르신 가족사랑 파크골프대회 ‘성료’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