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찬 대전대 교수 |
그러나 역시 눈길을 끈 것은 역대 제왕들 중 뛰어난 리더십의 소유자들이었다. 한고조 유방, 당태종 이세민, 그리고 청나라 강희제 등이 그런 인물들이었는데 그 중 꼭 한 사람을 꼽아보라면 그래도 당태종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북방의 피를 받은 용맹한 군주는 뛰어난 명신들의 보좌를 받으며 자신감과 결단력,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내치와 외치 모든 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겨놓아 ‘정관의 치’라고 후세사가들의 한결같은 칭송을 받았다. 명신들의 보좌도 결국은 그의 용인술에 기인한 것이로되 그러나 그도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동방의 강국 고구려를 어찌하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중국발 외신은 한국의 TV 사극이 당태종을 아둔한 군주에다가 애꾸눈으로 묘사하였다고 해서 중국인들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SBS의 ‘연개소문’과 KBS의 ‘대조영’이 고구려 정벌에 나선 당태종을 안시성 싸움에서 양만춘 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왼쪽 눈이 실명되고 참담한 실패 후 퇴각하게 되는 인물로 묘사하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홍콩, 대만까지 가세하여 당태종 모욕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고대사를 둘러싼 한중간의 충돌이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동북공정으로 야기된 고대사 침탈의 문제가 더욱 어려운 국면으로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된다.
사극을 사극으로 보면 그것이 사서가 아닌 바에야 허구의 개입이 있다고 하여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니다. 소비대중의 위력이 날로 성해지는 시대, 그리하여 시청률이 평가의 주된 기준이 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소비자인 시청자의 관심과 기호에 맞추는 것 자체가 시장의 논리에 해당하는 일이고, 더욱이 소비자가 생산자의 역할까지 떠맡는 프로슈머의 출현을 예고하는 이 시점에서 사극을 향하여 학문적 엄밀성을 운위하기는 곤란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 사극을 평범한 시정의 홈드라마와 같은 반열에 놓고 처리하기도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내용 여하에 따라서는 역사왜곡의 논란을 불러 일으켜 개인간, 집단간, 국가간 갈등의 국면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제10편 ‘고구려 대당전역’에는 연개소문, 양만춘, 추정국, 당태종, 설인귀 등 고구려와 당나라의 영웅호걸들이 펼치는 안시성 전투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다. 거기서 당태종은 왼쪽 눈을 화살에 맞고 말이 진흙에 빠져 포로로 잡히기 직전 설인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 돌아가는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되 광개토왕과 단군을 주인공으로 하는 후속 사극들이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 고대사를 다루는 사극인 경우 ‘퓨전’도 좋고 ‘팩션’도 다 좋으나 대중문화의 흐름이 턱없는 민족주의의 함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당태종도 중국인들에게는 충분히 존경을 받을 만한 그러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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