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하면 대강 이런데, 선거 때면 튀어나오는 들러리 2중대론의 소용돌이에서 생각난 여담이다. 거물 정치인을 이런 법과 저런 명분으로 꽁꽁 묶고 선거를 치른 나머지 명색 야당이 군사정권이 기획한 관제야당이라는 딱지를 못 면하던 시절의 슬픈 이야기다.
2중대. 그 내력 들추기는 이젠 신물이 돌 때도 됐지만, 누군가는 또 어원 풀이를 하며 개 잡은 몽둥이처럼 우려먹을 것이기에 되짚고 넘어가기로 한다. 물론 인터넷 검색만 해도 주르르 굴비 두름처럼 낚이는 지식 아닌 지식이다.
그러니까 본격 정치용어로 등장한 것은 5공 군사정권 때. 1981년 11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151석을 획득해 원내 제1당이 됐고, 민한당이 81석, 국민당이 25석으로 제1, 제2 야당이 됐다. 민정당 1대대, 민한당 2중대, 국민당 3소대는 정확히 이때 나온 말이다.
그 뒤에 서로 정통을 자처하거나 분열의 역사를 간직하며, 약한 쪽의 무정체성을 몰아세우며, 더러는 색깔론과 섞이며 감초처럼 따라다닌 2중대론을 치죄(취재)하자면 책 한 권 써내려도 모자란다. 얼마 전엔 열린우리당 탈당의원들이 야당으로부터 “열린우리당 2중대”, 청와대로부턴 “한나라당 2중대”라고 2중 비판을 듣는 경우도 벌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도, 아니 지금도 유효한 단골 메뉴가 된다. 발원지는 대전 서구을. 열린우리당 박범계 변호사의 출마 포기와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 지지 선언이 그 도화선. 한쪽은 2중대론을 부각시키고 다른 쪽은 좋다 싫다 못해 심드렁하게 선을 긋는 분위기다. 나의 적=적의 친구 논리로 방향성 잃은 표심을 잡을지, 선거에서 더하기일지 빼기일지의 셈법을 미리 안다면 어느 산자락에 돗자리 하나 깔아도 무방할 텐데.
하면 왜 2중대인가. 어린 장금이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듯이 그냥 2중대 냄새가 나니까? 본부중대인가 2중대인가는 지엄한 유권자 몫으로 남겨둔다 해도, 우리 정치판이 언제까지 중대 단위 전술훈련에 머무르나를 생각건대 딱하다. 선거운동이 막 개시된 시점에 어린 장금이와 최고상궁의 대화가 자꾸만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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