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의 연기, 한재림의 재능과 만났다
강인구. 신호등 앞에서 잠이 들 정도로 피곤해도 출근은 해야 한다. 집에서 입 벌리고 있는 ‘새끼`들을 봐서라도. 캐나다에 유학 보낸 아들도 있고 넓은 전원주택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꿈을 위해서도.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팍팍하다. 아내와 딸은 무시하기 일쑤고 직장에선 밀어내려 한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현실. 어금니 악다물고 앙 버티는 수밖에. 딱 40대, 이 땅의 가장들 얘기 아닌가. 직장과 가정으로부터 버림받고 힘들게 살아가는 가장들의 모습이 대체 뭐가 그리 우아하다는 건가.
우리와 다르다면 인구가 조폭이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승진은커녕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회사에 몸 바쳐 일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기감은 언제 뒤에서 칼 맞을지 모르는 조폭의 불안감과 뭐가 다른가. ‘우아한 세계`는 조폭이 등장하지만 조폭영화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생활인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고달픈지를 조폭 가장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방점은 조폭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찍혀 있다.
송강호는 “나도 올해 마흔이고 아들과 딸을 둔 아버지로서 강인구를 100%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생활 그대로인 것처럼 녹아든다. 인구는 진지하다. 그럼에도 적잖이 웃음을 자아낸다. 웃음을 의도한 설정도 아니고 배우들 또한 웃기려 하지 않는데 순전히 송강호와 오달수라는 인물로부터 유머가 실실 새나온다.
우스운 듯 슬프고, 치사한 듯 인간적이고, 욕하고 밉살스럽다가도 사랑스러운 우리 삶의 초상이 영리한 연출과 깔끔한 편집, 절묘한 연기에 담겨 가슴을 친다. 두 번째 영화 만에 이만한 작품을 뽑아낸 한재림 감독의 솜씨가 무엇보다 우아하다.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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