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
예술인의 恨과 사랑 이야기
박광수
8년만의 귀환작 ‘눈부신 날에’
가슴찡한 부정이 묻어난다
김기덕
감독의 시선이 달라졌다 ‘숨’
숨을쉬며 증오하고 용서한다
이창동
복귀 신고작 ‘밀양’
내용.제목 모두 비밀스럽다
거장들이 돌아온다. 한결 깊어지고 여유로워지고, 누구는 날카로워진 대신 누구는 부드러워졌다. 한국영화계의 큰 나무 임권택 감독이 100번 째 영화를 공개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 섬에 가고 싶다`의 박광수 감독도 신작을 들고 온다. 8년만의 귀환. 김기덕 감독이 한층 부드러워진 시선으로 돌아오고, 다음 달엔 문화부장관에서 감독의 자리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의 복귀신고식이 치러진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름만으로도 기대치를 부풀게 하는 이들은 우리 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작가주의 감독들. 거장의 내공이 실린 사람이야기, 사람 사는 이야기, 사랑이야기는 어떤 것일지, 뚜껑을 어서 열어 보고 싶어 좀이 쑤신다. 칸 영화제가 어서 오십사 초청을 서두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거다. 감각적이고 가벼운 영화에 길들여져 있는 국내 관객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을지도 궁금하다.
▲ 왼쪽부터 임권택 감독, 박광수 감독, 김기덕 감독, 이창동 감독 |
임권택 감독이 다음 주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천년학`은 14년 전에 나온 대표작 ‘서편제`의 뒷이야기. 떠돌이 소리꾼 유봉과 그 밑에서 소리꾼과 고수(鼓手)로 자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이복 남매 송화와 동호의 이야기다.
송화와 동호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서편제`가 삶의 한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영화라면, ‘천년학`은 예술을 하는 인간의 마음에 남은 한과 사랑을 다룬 영화다. 아름답고 깊다. 넓다.
임 감독은 넓은 품으로 남녀의 사랑뿐 아니라 척박한 삶의 뿌리와 거기에 잇댄 스산한 삶까지 끌어안는다. 슬픈 삶의 여정을 따라가지만 극도로 절제된 미학은 ‘아름다운 비애`로 쓰다듬는다. 절묘하게 달라붙은 판소리가 슬픔과 기쁨을 오르고 내리며 가슴을 울린다.
매화꽃잎이 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리는 화사한 봄날, 낙조에 붉게 물든 바닷가 갈대밭 등 정일성 촬영감독의 카메라가 잡아낸 인상적인 이 땅의 풍경화는 여전히 아름답다.
‘천년학`의 뒤를 잇는 영화는 박광수 감독의 ‘눈부신 날에`와 김기덕 감독의 ‘숨`.
‘눈부신 날에`는 양아치 같은 건달이 딸을 만나면서 변해가는 이야기다. 천진난만하지만 왠지 모를 슬픔을 지닌 딸의 행동 하나하나에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나간다. 박신양이 아버지 종대 역을 맡아 진한 부성애를 그려낸다. 딸 역은 MBC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봄이 역을 맡고 있는 서신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후 김기덕 감독은 확실히 달라졌다. 충격적인 장면들로 불편했던 전작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한 분노를 접고 한층 부드러워진 시선으로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숨`은 변화한, 그러나 여전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다.
형 집행을 앞둔 사형수와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실의에 빠진 여자와의 러브스토리. 상처받은 영혼들의 이야기라는 점은 김기덕표다. 하지만 “증오가 들이마시는 숨이라면 용서는 내쉬는 숨이다. 마움이 내쉬는 숨이라면 이해는 들이마시는 숨이다. 이렇게 숨 쉬다 보면 결국 물과 기름도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숨이 막힐 때까지 증오하고 용서하고 미워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감독의 설명은 영화의 색깔이 달라졌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화법도 쉬워졌고 웃음도, 깊이도 있다.
이창동 감독이 복귀신고식을 치를 영화는 ‘밀양`. 거장 감독에 연기력만큼은 최고라 할 전도연 송강호가 뭉쳤다고 해서 기대치가 높다. 남편을 잃은 서른세 살 여자와 그녀 옆에서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고 서성대는 남자의 이야기라는 정도뿐,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이 감독은 “밀양에서 찍은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밀양, 우리는 ‘비밀의 햇볕`, 시크릿 선샤인이라고 부른다”고 알듯 모를 듯, 선문답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여하튼 다음 달이면 삶이 흐르고 생이 깊어가는 비밀을 확인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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