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미 / 박완서 |
이번 작품 ‘호미’는 많은 분들이 박완서씨의 마지막 작품집이 될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나른한 봄 날을 맞아 많은 지지층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책이다.
말이 필요 없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렇다.
자신이 사는 작은 앞마당에 커다란 목련 한그루가 버티고 서있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크지도 않은 정원에 저렇게 커다란 나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하천부지에 옮겨 심을까 하고 식물전문가를 불러 상의해 보니 옮기는 비용이 어마어마했다. 별로 비싸거나 귀한 나무도 아니니 베어버리라는 말에 집을 새로 지으면서 베어달라고 부탁해 어느 순간 커다란 목련나무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름이 되고 마당의 잡초를 뽑다보니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어 너까지 왜 속을 썩이냐고 투덜대며 손바닥으로 훑어서 없애버리곤 했다. 그렇게 여름 내내 그 짓을 했고 겨울이 지나면 그 나무는 확실하게 죽었으려니 하고 안심했다. 이듬 해 좀 오래 여행을 하고 돌아왔더니 나무 그루터기는 사방으로 이파리가 아닌 가장귀를 뻗고 있었다. 나는 그 나무의 왕성한 생명력에 질린 나머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너한테 졌다고 무조건 항복하고 말았다.
그 이후 목련나무는 나의 가장 친한 말동무가 되었다.
미안하다고 너를 죽이려 한 것도, 너의 꽃을 싫어한 것도 사과할 테니 내년에는 꼿을 피워달라고 자꾸 말을 시켰더니 그 이듬해는 꽃이 몇 송이 피었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칠십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 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내년 봄의 기쁨을 꿈꾸다니…….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로구나.”
박완서는 이번 산문집에서 맑고 아름다웠던 영혼들을 가슴 찡하게 추억한다. 세상에 대해 더없이 너그러웠던 그녀 주변의, 그녀보다 앞서 세상을 살다갔거나 여전히 우인으로 존재하는 어른들의 삶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하는 상상력의 힘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준다.
박완서의 시어머니 되시는 분은 “종교도 없었고 학교도 안 다녔지만 인간을 아끼고 생명을 존중하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신 분”이었으며, 철저히 유교적이었던 할아버지는 대처에 나가 있는 손자들이 방학해서 내려와 있는 동안 차례도 지내고 음식 장만을 하기 위해 양력설을 쇠도록 한 진보적인 분이셨다. “네가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잔칫집이나 친척집에 손님으로 가서 윗자리에 앉지 마라. 일꾼이 게으르게 굴었다고 품삯 깎지 마라” 등등 그분의 훈계와 뜻을 박완서는 오늘도 잊지 않고 이 글 곳곳에 그런 정서를 바탕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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