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대한민국의 뒷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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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대한민국의 뒷간

  • 승인 2007-04-04 00:00
  • 신문게재 2007-04-05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딱하다. 똥이여! 똥을 똥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슬픈 현실이여!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길동’의 심정이 저러했을까?” ―필자 글 '사색의 향기인가' 중


시루봉 가는 길에 어느 모녀의 대화를 듣고 엄숙주의 숲에서 진짜 향기를 맡았다고 썼던 것이 딱 1년 전이다. 대화 소재는 복숭아밭 이랑 사이로 솔솔 풍기는 똥 냄새. 서당식 한학의 영향인지 몰라도, 똥 분(糞) 자가 쌀(米)의 다른 모습(異)임은 늘 신기하다.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되는 한 몸인, 자연친화의 뒷간을 그리다 고향 아산으로 귀농한 이동범씨는 “챙길 것은 우리 뒷간의 생태성이요, 버릴 것은 뒷간에 대한 편견”이라며 위생 이데올로기의 반생태성을 까발린다. 실천적으로 치면 “똥오줌에도 도가 있다”(道在屎尿`도재시뇨)던 장자나, “내일 완벽한 똥을 눌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잘 살라”는 도올보다 몇 수 위다.

우리에게 화장실은 어떤 곳이던가. 역사책을 뒤적일작시면 음모와 비리가 버무려진 공간이다. 계모와 오빠를 죽인 측간귀신이 머리카락을 세는 곳이며 거름공장이자 약재창고였다. 절간의 고시 준비생에게는 여신도를 훔쳐보는 비상한 심심파적 구실도 했으리라.

그러던 것이 문화가 됐고 예술과도 스스럼없이 접목하고 있다. 엊그제(3일)는 또 주한 외교사절들이 초현대식 화성행궁 화장실과 광교산의 반딧불이 화장실을 찾았다. 세계화장실협회 준비위 초청이었는데 그 위원장이 바로 국정감사장에서 모 시청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라고 점잖게 훈수하던 심재덕 국회의원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봄꽃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우리 화장실이 각 나라 신문지상에 ‘한국이 화장실 혁명을 리드한다’는 “원더풀”한 기사로 실리니 아무튼지 기분은 좋다. 올림픽을 치르는 베이징 등지에도 우리 화장실 문화가 전수될 것 같다. 남녀가 마주보는 형태로 급한 일을 보는 그쪽 공중변소 생각이 겹쳐진다.

이래저래 격세지감이다. 불국사 비로전 옆의 대형 돌 변기는 오늘 같은 상황을 예감이라도 했는지. 기회자 장삼십, 기분자 장오십(재 버리면 곤장 30대, 똥 버리면 50대)은 옛말이고 똥을 어차피 땅으로 되돌리기는 힘들어졌다. 순환과 공생의 설자리는 잃은 대신에 화장실 없는 베르사유 궁전보다 더한 호사를 누리며 웰빙, 웰다잉 말고 잘 싸는 방법이라도 챙겨봄직하다.

‘웰변’이 잘 안 될 때는 이렇게 한다. 근심도 풀 겸해서 서산 개심사의 봄바람에 숭숭 뚫린 해우소라도 다녀오거나 순천 선암사의 법당같이 높고 깊은 해우소에서 ‘파리야 극락 가자’란 낙서라도 본다면 쾌변에도 성공하고 창졸간 가슴 한켠에 부처 한 분 모시는 격이 될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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