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타결 소식을 접하고 떠오른 인물이 있다. 일면식도 없는 열린우리당 소속 조일현 국회의원이다. 그에 관해서는 두어해 전에 읽은 한 차례의 신문기사가 고작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가 다시 뇌리에 떠오르다니. 당시의 인상이 무척이나 강렬했나보다.
얘기는 2005년 11월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는 5개월을 끌었던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바로 그 직전 국회의장이 찬반토론을 요청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탓인지 토론자로 신청한 5~6명의 의원들은 모두 토론을 철회했다. 이때 유일하게 나선 사람이 조일현 의원이었다.
여기서 조 의원에 대한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그의 지역구는 강원도 홍천`횡성이다. 자신의 부모를 포함해 이 지역 유권자의 70~80%가 농민이라고 한다. 그는 선거에 통산 여섯 번 출마해 네 번 떨어졌다. 낙선자 시절에는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중인 1993년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그는 제네바에서 쌀 개방에 반대하는 삭발투쟁을 벌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다시 무대는 2005년 국회다. 조 의원은 민노당 의원들이 점거한 발언대 옆에서 마이크도 없이 연설을 시작했다. 자신을 “맨발로 사는 닭발보다 더 험하게 사는 농사꾼의 자식”이라고 소개하며 “쌀 협상이 100% 잘 됐다고 할 순 없지만 협상을 안 받는 것보다 받는 것이 낫다”고 일갈했다. 1993년 당시 10년의 유예기간을 벌었고, 그 덕분에 쌀의 가격 경쟁력을 키우고 농업구조도 개선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치권은 뭘 했냐, 표만 의식하다보니 42조원을 쏟아 붓고도 농업은 더욱 황폐해졌다며 이번에 다시 유예협상을 처리한 뒤 10년 동안 농업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파했다. 단상을 점거 중인 민노당 의원들도 그의 말 만큼은 조용히 경청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한미 FTA 체결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골리앗 미국과 맞장 떠서 챙길 수 있는 실익이 얼마나 될까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 때처럼 미국의 간곡한 요구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 대통령이 솔선수범한 이유도 미스터리다. 대통령은 그 무엇보다 먼저 제 나라의 이익과 국민의 안위를 헤아려야 마땅한 존재 아니던가. 더구나 FTA 탓에 정치인 노무현은 우군을 주적으로 돌려세워야 했다.
그런데도 내 머리를 맴도는 건 여전히 국회의원 조일현이다. 그의 말마따나 우리는 더 큰 시장에서의 경쟁은 등한시하고 각종 보호책에 기대어 좁디좁은 국내 시장 안에서 이전투구만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산업구조를 혁신하고 고도화하는 일이 더딘 것도 어찌 보면 그 귀결이다.
조 의원은 “현명한 사람은 들으면 알고, 똑똑한 사람은 보면 알지만 미련한 사람은 당해야 안다”는 말을 했다. 경쟁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법이다. 승부는 점칠 수 없고 패자는 양산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경쟁은 사람을 단련시키듯 기업과 산업의 낙후한 체질을 개선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불편할지언정 지금보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인 셈이다. 조 의원의 마지막 멘트는 “죽을힘으로 살자”였다. 객기로 보인 FTA가 호기로 작용하도록 지혜와 용기를 추스를 때라는 생각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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