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미녀 스파이,정보 빼내려다 사랑 빼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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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미녀 스파이,정보 빼내려다 사랑 빼앗기다

■블랙북 -출연 : 캐리스 반 허슨, 세바스찬 코흐

  • 승인 2007-03-29 00:00
  • 신문게재 2007-03-30 13면
  • 안순택 편집위원안순택 편집위원
적과 사랑에 빠진 미모의첩자 이야기
전쟁보다 잔혹한 인간의 비열한 본성


폴 버호벤 감독하면 어떤 영화가 떠오르는가. ‘로보캅’ ‘토탈 리콜’ ‘할로우 맨’ 같은 공상과학영화? 아니면 ‘원초적 본능’ ‘쇼걸’ 같은 끈끈한 관능이 볼거리인 영화? 어느 쪽을 선택하든 버호벤 상표는 변함이 없다. 극단적인 폭력, 대담한 노출 표현, 스피디한 전개로 영화적 쾌감을 몰아치는 게 장기다. 한마디로 버호벤의 영화는 재미있다.

‘블랙북’은 나치와 레지스탕스가 등장하는 2차 대전 스릴러다. 네델란드 레지스탕스 일원이면서 나치 장교를 유혹해 첩자 노릇을 하다 장교와 사랑에 빠진 마타하리 레이첼의 이야기다. 공작과 역공작의 회오리에 휘말려 이중첩자로 낙인찍힌 레이첼은 나치가 패망한 뒤에는 나치 가담자들을 색출해 처형하는 양민들에게까지 쫓긴다. 진짜 배신자를 밝혀내지 않는 한 그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버호벤은 70줄의 나이임에도 그의 장기를 열정을 담아 풀어낸다. 레이첼의 역경은 특별한 장치 없이 사건과 결과를 시간 순으로 이어 붙이면서 빠르게 진행된다. 레이첼의 캐릭터를 ‘원초적 본능’에서처럼 과감한 노출로 설명하고, 폭력은 ‘로보캅’식으로 극단적이다.

레이첼과 그녀를 사랑하는 나치 장교의 행로를 쫓는다고 ‘전쟁 속에 꽃 핀 사랑’을 연상하진 마시라. 버호벤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천박하고 비열한 본성을 주목하는 감독임을 기억하시길. 그는 전쟁의 본질은 조국이나 자유, 해방 같은 때깔 좋은 명분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임을 드러내고 전쟁의 이면에는 추악하고 역겨운 탐욕이 도사리고 있음을 폭로한다.

오랜만에 맛보는 버호벤의 독향(毒香), 나쁘지 않다.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는 시선이 불편하지만 지루하진 않다. 특히 끝자락에 벌어지는 일을 주목하시라. 청소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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