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책도 제대로 읽으면 성(聖)스럽기도 하려니와 군데군데 성(性)스럽고 재미있다. 노아의 아들 함이 아버지가 만취해 잠든 틈에 몰래 고추를 훔쳐보고 대대손손 가혹한 저주를 받았다는 내용도 그것이다. 하여간 고금을 막론, 내 것이 남의 것보다 큰가 작은가 하는 문제는 지대한 관심사였음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사건’들이다.
남성이 무슨 계급처럼 여겨졌을 때, 고추는 이를 뒷받침하는 가장 확실한 기관이던 적도 있었다. 이 사실을 한사코 강조하려는 듯, 유럽 남성들이 입던 반바지는 그 길이가 너무 짧아진 나머지 언뜻언뜻 부끄러운 부위가 노출되기도 했고 졸지에 코드 피스라는 고추덮개까지 생겼다. 거기에 장신구를 착용하고 거대하게 부풀리고 싶은 욕심의 흔적을 생생하게 대변해주는 토착부족이 이 21세기에도 살고 있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잘못 튀어나온 대물 신드롬을 믿고, 고추에 벌침을 쏘여 크게 만들려다 죽는 경우로까지 번진다. 고의로 숭상되고 비약된 포르노물의 왜곡 사이즈 탓도 크다. 며칠 전에는 성기 확대 사이트를 개설하고 고추를 5~7㎝ 키워주겠다며 무려 8800여명에게서 회원 가입비를 받아 챙긴 사람이 구속되는 황당무계한 일도 벌어졌다.
그걸 근육처럼 키우겠다는 생각은 말할 것도 없이 잘못이다. 남성의 90% 정도는 자신의 고추를 비정상이라고 진단한다는 의학상 통계가 있다. 자기 눈으로 내려다보면 아랫배 속에 숨은 몇 센티미터로 인해 70% 크기로밖에 안 보여 목욕탕에 가길 꺼리는 사우나 콤플렉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이유다. 크기 궁합보다 피부 궁합을, 성적 능력보다 애정이 작지 않은지나 먼저 따져볼 일이다.
우리 판소리 ‘심청전’의 뺑덕어멈 행실을 빗댄 “코 큰 총각 술 사주기…”라는 구절도 결국 이러한 속설의 반영이다. 좌우간 코가 크면 콧구멍이 클 뿐이다. 명품은 스스로도 빛나지만 누가 갖고 어떻게 쓰느냐에도 달렸다. 기죽을 것, 미안해할 것 없다. 크기에 집착하지 말고 부디 숨어 있는 몇 센티미터의 감동을 누리기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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