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큰 훤칠한 키에 뽀얀 피부, 활짝 웃는 미소가 예쁜 영현이(가명). 우리 반 영현이는 특수교육 대상자입니다. 말은 없지만 아이들이 좋아해서 늘 주변에 친구들이 많고 어른인 나를 꼬박꼬박 잘 챙깁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것은 밥을 먹으러 갈 때 기다려서 손을 잡고 가고, 급식을 받고도 꼭 내가 앉아야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3월은 잘 지냈는데, 영현이가 오늘은 좀 달랐습니다. 도움실에서 돌아와 잠시 앉아 있더니 공책을 박박 찢어버렸습니다.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조금 기다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려니 하고 있는데, 영현이가 눈물을 글썽입니다.
“악!”
바람처럼 사라지는 아이, 쫓아나가니 금방 다시 돌아와 내 손을 잡고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을 4층으로 갑니다. 그리고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합니다.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나는 그냥 영현이를 꼭 끌어안습니다.
“이러지 마, 영현아. 선생님은 영현이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선생님 좀 봐.”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는 영현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울상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영현이와 지낸지 이제 한 달. 나는 아직 이 아이에 대해 잘 모릅니다. 급하게 달려온 도움실 특수교육 선생님은 혼자 교실로 보내는 연습을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합니다. 새로운 경험이 혼란스러웠던 것이지요.
도움실 선생님의 손도 뿌리치고, 기어이 내 손을 잡고, 자기가 처음 가 본 곳을 다시 한 번 갔다 온 뒤 비로소 자리에 앉아 숨을 고릅니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내 손에 연필을 쥐어줍니다.
오늘도 나는 영현이의 여덟 칸 공책에 커다랗게 글씨를 써 주고 따라 읽힙니다.
“영현아, 사랑해. 선생님, 사랑해요.”
재작년 영현이를 가르치면서 썼던 일기 중 하나입니다. 이제 6학년이 된 영현이는 또 우리 반이 되었습니다. 4학년 때와는 사뭇 다르게 몸도 마음도 훨씬 많이 자랐고, 사회 적응력도 많이 늘어서 교육의 힘을 느낍니다. 여기엔 영현이 가족의 노력이 그 무엇보다도 컸음을 잘 압니다. 부모 마음을 어찌 교사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3년 연속 통합학급을 맡으니 통합학급에 있는 장애학생의 보다 의미 있는 학습 활동 참여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서로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어른인 우리가 너무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현이와 어울려 즐거운 한 때를 만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영현이를 비롯한 우리 학급 아이들에게 올 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뜻 깊은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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