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어쭈구리 사례가 많기 때문일까? 일테면 그렇다. ‘공직은 영원하다’를 좌우명 삼아 평생 해고 염려 없이 지내다가 퇴직 후에 소속기관, 산하기관으로 낙하산 타는 것도 어쭈구리다. 질그릇밥통들 눈엔 철반완(鐵飯碗.톄판완)을 넘어 무슨 황금밥통 같다. 봉사정신은 약에 쓰려야 없고, 주민 알기를 우습게 알고, 법의 그늘 아래 잠자며, 피 같은 세금 축내 정년까지 쌩쌩 보장하는 어쭈구리 행태를 없애자는 것이 철밥통 깨기다.
그 정도면 약과라는 말이 있다. 꿀물과 설탕물에 밀가루 반죽하여 과줄판으로 찍어낸 것이 약과(藥果)다. 달고 부드러워 누구든 수월히 먹는 음식이다. 극히 일부에서는 허위로 출근 도장을 찍어 시간외 수당 타먹기를 아무렇지 않은 약과로 생각한다. 양심의 영어(conscience) 어원은 ‘함께 안다’는 뜻. 이건 주민을 무시하고 혼자만 아는 비양심이다.
다시 말하지만 개혁은 가죽을 갈아주는 것이다. 낡은 가죽끈을 새걸로 가는 것이지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다. 철밥통 깨기는 인사개혁일 때만 유용하다. 능력껏 일하는 대다수의 숨통이 확 트이는 신선한 바람이 아니면 집어치워야 한다. 개혁의 담장 위에서 헛발 내디디면 곧 개악이다. 개혁은 진보인데, 진보에서 정치적 의미를 빼면 수준이 높거나 나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엑스맨놀이처럼 비쳐져 제대로 시행해보기 전에 부작용이 부각되고 퇴보의 그림자가 얼씬거린다. 제비뽑기로 퇴출자를 가리다가 퇴출당한 부서장의 사례도 공직이 합리성을 가장한 통정성(通情性)에 기댄 조직에 가깝다는 우회적 증거일 수 있겠다.
구미가 당기면 회(蛔)가 동(動)한다 했다. 맛난 음식에 회충이 먼저 알고 움직인다는 본뜻인데, 철밥통 깨기에 회가 동한 것도 덜 나쁜, 덜한 악(lesser evil)이겠다는 실용주의 사고에서였다. 저울로 직업은 달 수 없을지라도 성실도는 달 수 있다. 철밥통 깨기란 밥통에 걸맞게 밥값하자는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진짜 어쭈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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