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우면 당대 선망의 대상이던 한반도 물건, 즉 카라코로모(韓衣-한복), 카라스키(쟁기) 등의 카라모노(韓物)를 물증으로 보라. ‘백여 명 모두 백제옷을 입었으며 보는 이들이 매우 기뻐하였다’는 역사 기록도 있다. 백제역(구다라역)과 백제초등학교(구다라소학교), 증아강(曾我川)으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백제 여인이 풀어놓은 옷고름같이 흐르는 백제강(百濟川)을 보라. 영국 욕(York) 사람들이 미국땅에 ‘새로운 욕’(New York)을 건설한 것에 맞먹는 역사적 흔적이다.
보기에 따라 전승국 신라의 뒷전에 밀린 패망국 백제의 흔적은 부여나 공주보다 일본에서 잘 살아 있다. 그러나 백제가 선진문물의 창구였다 해도 인과관계의 천으로 짜인 역사마당에서 우월감과 콤플렉스가 전부는 아니다. 이 점에 유의하며 한류 바람 침체 이후의 대안은 ‘백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일본을 존재케 했던 전설의 한국 여인 등 드라마틱한 소재는 필자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좋은 의미로 한류를 상업화하는 문제와도 결부하고 싶다.
마침 일본 오사카 왓소축제와 백제문화제의 상호 교류도 추진된다고 한다. 백제를 동경하고, 백제 것을 최고로 치던 고대 일본인의 원형질적인 그리움을 한류에 접목시키자면 문화와 경제가 어느 지점에서 합류할지를 끝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찻잔을 팔 때 다도를 가르쳐야 하는 이치처럼 우리가 아스카문화촌을 만들 때도 뿌리를 알려는 모든 일본인들이 옛 백제땅을 찾아 즐기고 온몸으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일본 여성들을 꿈의 포로로 만든 후유노 소나타(겨울연가)보다 더 길고, 욘사마보다 짜릿한 한류를 일본열도 안에 꽃피울 차례다. 시멘트만 덕지덕지 바를 생각은 말고 콘텐츠의 다양화, 그보다 콘텐츠의 코드를 성공시키자는 뜻이다. 1500년 전부터 길게는 수백 년씩 백제의 형제문화권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맥맥이 이어온 한류 전통을 최소한 천 년 이상 잇는 일은 우리, 백제 상속자들이 할 몫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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