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래사는 경부고속도로 대전 나들목에서 계족산성과 대청호로 이어지는 등산로에 있다. 바람이 약해 급격하게 확산되지 않았지만 붉은 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소방관과 공무원들은 진화 작업으로 부산했다. 일요일 오후 적막하던 선비아파트단지가 북새통이었다. 때때로 불어 닥치는 강풍에 불티가 회오리쳤다.
‘아 뭐해 소방헬기가 묵시록처럼 와야지’ 큰 녀석의 원망이 시그널이 됐는지 굉음을 울리며 헬기가 나타났다. 두 대의 붉은색 헬기는 연기가 나는 상공을 몇 차례 선회하더니 곧바로 진화작업에 들어갔다.
그 후 소동에 비해 진화작업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무엇보다 계족산 바로 뒤편이 대청호여서 물 공급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도로가에 늘어서 있던 주민들은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하는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댔다.
‘아빠, 월남전 헬기신 같죠.’ 분명히 아들은 ‘플래툰’이나 ‘하늘과 땅’ 혹은 ‘지옥의 묵시록’ 같은 영화를 떠올렸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헬리콥터마다 확성기에 바그너를 틀고 적진으로 몰려가는 ‘지옥의 묵시록’ 공습신이다. 물론 영화도입부에 천장에 달린 선풍기의 날개가 헬기 프로펠러와 기막히게 겹쳐지는 명장면도 있지만. 아무튼 녀석은 잔불 처리하는 오렌지색 소방관들과 포연속의 미군을 오버랩하고 있었다.
큰애는 산불 진화작업을 그렇게 환치해버렸다. 이 영화의 감독 코플라는 ‘미국인이 베트남전쟁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엄청난 제작비와 인력, 장비를 투입 무려 4년 동안 다들 조금씩 미쳐가면서 제작했다는 것이다. 전쟁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광기와 양면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문제작 ‘지옥의 묵시록’. 녀석은 영화광인데 인터넷으로 다운받아 웬만한 명화는 섭렵했다. 특히 출처도 불분명한 일본 애니메이션도 줄줄 꿴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1974년 미대사관 옥상에서 헬기에 매달리는 난민들의 애처로운 장면이 떠올랐다. 1955년 시인 김수영(1921~1968)은 ‘헬리콥터’라는 시를 발표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라는 시 한편. 1950년 7월 이후에 한반도 상공에 나타난 괴물 헬리콥터. 시인은 ‘비애의 수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그의 설운 모양을’ 좁은 뜰에서 쳐다보게 되었다. 시인은 그 헬기에서 ‘민족의 자유와 비애’를 동시에 발견한 것이다.
최근 ‘헬리콥터 보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는데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에서 파생되었다. 헬기 프로펠러처럼 자녀 주변을 맴돌며 간섭을 멈추지 않는 부모들. 그런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나 유난히 부모에 대한 애착이 강한 자녀들이 바로 헬리콥터 보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조류를 반영 아예 부모를 상대로 취업설명회를 여는 회사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1980년 이후 출생한 아이들에서 이 신드롬이 일고 있다. 상급학교부터 취업에, 결혼상대까지 모든 결정에 서로 미루고 간섭하는 부모와 자녀. 분명 요즘 아이들은 과잉보호 속에 헬기형 인간이 되어간다. 이들은 수직으로 이착륙하고, 정지하고, 전후좌우 마음대로 조종하고 즉물적으로 몰려다닌다. 그러나 헬기는 더 멀리 더 높이 날수가 없다. 경험과 집적의 활주로가 필요한 제트비행기가 대륙을 오가는 법이다. 아이들 키우기가 더 힘든 세상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