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무령왕릉은 1971년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어 100년 만에 한번 있을 정도의 대 발굴을 경험하게 하였으며 지석, 금제관식, 석수 등을 포함하는 108종 2906점의 출토 유물들은 백제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할 정도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학술적으로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묻힌 왕의 이름과 연대가 정확히 적혀있었으며, 더구나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서로 인정받고 있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정확하게 일치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역사기록의 정확성을 증명하였다.
백제문화는 또한 일본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 등 1500여년전 동북아시아 외교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령왕의 탄생지가 백제에서 일본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가당도(加唐島)에서 출생하였으며 더구나 그의 왕릉에서 발굴된 무령왕의 관은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으나 일본에서는 아름드리 크기로 성장하는 금송 목재로 되어 있어 일본에서 보내온 목재로 왕의 관을 짤 만큼 친밀한 국제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그의 왕릉에서 발굴된 유물들 중에는 오수전이나 백자 등 중국으로부터 온 유물도 다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1500년 전에도 외제를 좋아했는가 하고 할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하면 그만큼 외국과의 물자 교역이 왕성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500여 년 전 당시 동북아시아 지역의 무역중심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러한 폭 넓은 국제성을 지닌 백제문화의 가치를 바로 인식하고 올바로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주는 책임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그동안 공주와 부여에서 격년제로 시행되어 오던 백제문화제를 충남도의 주관 하에 국제화시키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백제 관련 문화제는 서울의 송파구에서도 열리고 있다. 백제가 수도를 하남(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다시 사비(부여)로 옮겨다녔으니 여기저기에서 백제를 기념하는 문화제가 열리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개최하는 곳마다 또한 한·일 관련 테마가 들어가는 등 국제활동 등에서는 혼선이 있을 수도 있다 하겠다. 일본 천황도 몇 년 전 선조가 백제계임을 밝힌 적도 있는 만큼 백제문화제 개최 때 백제의 활발한 국제활동 영역을 살리는 부분도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백제문화제를 국제화하는 노력과 함께 백제문화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진하는 일 또한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문화유적을 감상할 때는 그 크기와 외관적인 화려함 보다는 그 유적이 갖고 있는 시대성, 역사성, 문화적 의미를 음미하여야 하듯이 각 문화유적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며, 이런 의미에서 백제문화의 국제성 부분은 당대의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세계적 가치가 있음을 학술적 연구를 통하여 증명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그야말로 지역의 전문가와 행정기관이 발벗고 나서 수년간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일단 되면 국제기구를 통하여 전 세계적으로 홍보가 되고 있으며 부수적으로 관광객 증가는 물론 한국 상품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는 경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1997년 우리나라가 IMF 위기를 맞았을 때, 프랑스의 한 유명일간지 사설은 한국이 앞으로 경제 발전을 지속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투자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기사가 기억난다. 진정한 GNP 20,000 달러의 경제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귀 기울여 들어야만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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