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전 총장이 지리멸렬한 여권의 경쟁력을 반등시킬지, 나아가 국정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사족일지 모른다. 현재 마땅한 후보자가 없는 여권은 물론 야당에서조차 탐을 내고, 진보와 보수 세력 모두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보기 드문 인물임을 고려할 때 그의 자질에 큰 모자람은 없어 보인다.
다만, 정운찬 전 총장에 대한 충청지역 언론의 호의적인 태도가 그의 철학이나 식견이 아니라 그의 출생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즉 충청권이 영·호남의 캐스팅보트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충청권 출신이 당선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충청권 주도론`이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첫째, 정 전 총장을 충청권 주도론의 중심인물로 간주하는 행태는 망국적 지역주의의 답습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역주의는 우리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고질병이다. 유독 선거 시기에 기승을 부리면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선거를 축제가 아닌 머릿수 싸움으로 전락시키는 주범이다. 지난 대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건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서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지역주의가 이번 대선에서 다시 고개를 쳐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행여나 우리 지역의 언론이 그 온상 구실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둘째, 우리 지역에서 출생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우리 지역이 개발의 특혜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대통령직은 모름지기 우리 지역이 아닌 우리나라를 대표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어느 지역이나 계층에 치우치지 않고 국정을 운영하게끔 힘을 보태고 이를 감시하는 것이 국민과 언론의 도리다. ‘우리 지역 출신이니까…` ‘내가 지지해 주었는데…` 하는 심정에서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것은 대통령직 수행에 부담만 줄뿐 그 폐해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
언론은 이제 자기 지역의 이기적인 발전을 희구하는 ‘지역주의 인물론`을 청산할 때가 됐다. ‘충청출신 박찬호·박세리 맹활약`에서 ‘충청출신 김우식 차기총리 유력`까지는 애교로 보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대선 관련 보도만큼은 달라야 한다. 정운찬 전 총장의 출생지를 앞세우기 이전에 그의 자질과 능력이 평가의 대상이 되고 판단의 준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언론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목청 높인 ‘정책노선 인물론`이 새로운 정치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좌우하는 것은 언론이다. 언론이 지역주의에 기대는 한 국민의 선택도, 정치의 수준도, 나아가 그 나라의 운명도 그 덫에서 헤어날 도리가 없게 된다. 그래서 우리 지역의 언론에 이런 말을 건네고자 한다.
“글을 쓰는 순간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자기 글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고, 얼굴을 붉히지 않고도 다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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