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 많은 세상에서 말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
어쩌면 일그러진 거울 아닐까?
지면 관계상 곧바로 영어로 들어가거니와, 한국말만 복잡한 게 아니다. 데이트하러 가는 여성한테 ‘그’가 누구냐고 묻는 대신, ‘누구’와 데이트하느냐고 물어야 한다.(Who is he?→Whom are you dating?) 상대가 여성일 수 있기 때문인데, 아무튼 전후좌우를 잘 살펴볼 일이다. 남녀 평등 언어(non-sexist language)가 펼쳐지는 마당 한복판에서 남성 우월주의 사고라고 멍석말이를 당할 수 있으니까.
전국 웬만한 도시라면 YMCA라는 단체가 있다. 영맨들(Young Men)이 모여 기독교청년회로 번역되는 이 단체가 ‘만민’ 평등과 기회의 공정을 무시하고 총회에서 여성을 배척하는 바람에 요즘 구설수에 휘말렸다. 일제강점기에는 2·8독립선언의 산실로 3·1운동의 모태가 되기도 했던 해당 YMCA가 연맹에서 제명당해 이름을 잃는 초유의 사태도 빚어졌다.
결국 의식의 문제인 것 같다. 맨(man)은 남자, 남성 외에 사람, 인간의 보편적 뜻이 있다. 영어권에 나가려면 퍼슨(person), 피플(people), 휴먼(human) 등 다른 말로 대체되는 경향쯤은 알고 가야 한다. 여성이 그림자처럼 숨어 있다며 이 말의 대표성이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말하기 전에는 또 생각도 판단도 곁들여야 한다. 주방 아줌마, 처녀작, 스포츠맨, 윤락녀, 된장녀가 성 평등의 시각에서 성 차별적인 말로 꼽혔다. 정겨운 ‘아줌마’가 특정성 비하가 될 수 있다. 의사소통에 더해, 말에는 사람을 흑싸리껍데기로 여기는지 여왕처럼 떠받드는지의 태도와 메시지가 깃들어 있다. 말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어쩌면 일그러진 거울이다.
가끔은 그래서 ‘맨’이 남자일지 인간일지를 따지는 것조차 우문(愚問)이 된다. 흐름을 무시하고서 성차별 아닌 성구별 운운하다간 큰코다친다. YMCA(기독교청년회) 아닌 YWCA(기독교여자청년회)로 가면 될 것 아니냐고 따져 묻지 말자. 청천하늘에는 잔별도 많고, 세상에는 말도 참 많다. 아니, 말이 많은 세상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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