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업 충남과학고 교감 |
‘조건부로 공부시키기’의 예를 들면, ‘세 시간 공부를 계속하면 과자를 사주겠다’ ‘수학시험을 만점 맞으면 장난감 로봇을 사주겠다’ ‘영어 단어를 50개 외우면 컴퓨터 게임을 한 시간씩 하도록 허락하겠다’ ‘반에서 몇 등 안에 들면 여행을 시켜 주겠다’등이 가장 흔한 방법들이다.
이들은 왜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할까? 한마디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조건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공부를 계속하도록 했던 마약과도 같았던 조건(미끼?)이 갑자기 없어졌기 때문에 금단 현상(?)이 나타나 수업시간 중에도 그저 멍하니 앉아있거나 졸기 일쑤인 것이다.
부모가 공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던 조건들(과자, 장난감 로봇, 컴퓨터 게임 등)을 습관적으로 쓰다보면 학생은 점점 수단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어느새 수단을 목적시 하게 된다. 그야말로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어 부모의 본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시기에 공부를 할 목적을 잃어버린 불행한 학생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위에 든 수단을 전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아주 가끔씩 사용하는 것은 모르나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열심히 공부하여야 할 시기에 허송세월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최근 컴퓨터 게임이 ‘조건부로 공부하기’의 ‘조건’이었던 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 오기 전까지 컴퓨터 게임을 잘하는 우등생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공부할 의욕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한다. 왜 그렇게 갑자기 의욕을 잃었을까? 그 동안 그의 부모님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만큼 게임할 시간을 허락 했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게임할 시간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학생의 공부의 목적은 공부 자체가 아니라 게임이었던 것이다.
‘왜 공부를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학생 스스로 깊이 성찰하고 깨닫도록 하는 게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